연구실 안전관리, 관행을 넘어 법적 책임의 영역으로
2026.01.27.
대학과 연구기관의 실험실은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이자 치열한 연구가 이뤄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종사하는 연구 인력은 학업을 수행하는 학생이면서 동시에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근로자이기도 하다. 학생인가 근로자인가. 이 경계가 모호한 공간에서 연구활동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된 법률이 '연구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대학 및 연구기관 등에 설치된 과학기술분야 연구실의 안전을 확보하고 연구실 사고로 인한 피해를 적절하게 보상하여 연구활동종사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연구실안전법 제1조).
그런데 현장의 인식은 법의 취지와 거리가 있다. 연구실 사고가 발생하면 연구원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거나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안전 조치 미흡을 용인하는 경향이 일부 있다. 그리고 실제로 최근 5년간 발생한 연구실 사고 통계를 살펴보면, 연구 활동 종사자의 불안전한 행동에 기인한 사고가 전체의 약 61.8%를 차지한다는 점이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하는 듯하다.
그러나 법의 시각은 다르다. 연구실안전법은 연구실책임자에게 해당 연구실의 유해인자에 관한 교육 실시 의무와 연구활동에 적합한 보호구 비치 및 착용 지도 의무를 명시적으로 부여하고 있다(연구실안전법 제9조 제3항, 제4항). 이를 소홀히 할 경우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고, 법원 역시 연구실책임자와 소속 기관의 관리·감독 의무를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연구실책임자 개인의 관리 소홀이 문제된 사안이다. 대학 실험실에서 학생이 폐시약을 처리하던 중 황산 폭발로 화상을 입었다. 판결에 따르면, 폐액통의 안전장치가 열린 채 방치돼 있었고 학생에게 보호안경 착용조차 지시되지 않았다. 이에 당시 연구실책임자는 해당 실험이 단순 분해 반응이라 보호안경이 불필요하다고 항변하였지만, 법원은 연구실책임자와 대학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대구지방법원 2023나325426 판결). 서로 반응할 수 있는 화학물질이 혼합될 경우 급격한 화학반응이나 폭발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사전 교육과 관리 감독이 부재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민사책임에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연구실책임자의 잘못된 판단이나 관리 소홀은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도 한다. 액체질소 용기에 안전장치가 없는 주입기를 임의로 제작·설치해 폭발 사고가 발생한 사안에서, 법원은 연구실책임자에게 업무상과실치상죄로 벌금형을 선고했다(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 2024고단122 판결). 피해자가 해당 연구실의 숙련자였다는 사정도 면책 사유가 되지 못했다. 연구실책임자가 위험한 작업을 방치하고 보호구 착용을 감독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업무상 과실이라는 취지다.
물론 모든 연구실 사고가 법적 책임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질병과 업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서울고등법원 2020누64530 판결).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질병의 발병 원인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를 판단한 것일 뿐 연구실의 안전관리 체계가 미흡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연구활동종사자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할 경우 연구실안전법보다 더 강력한 처벌 규정을 가진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될 수 있음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이제 연구실 안전은 권고 사항이 아니다. 지키지 않으면 법적 심판대에 서야 하는 강행 규정의 영역이다. 연구주체의 장과 연구실책임자는 연구실 설치·운영 기준을 준수하고(연구실안전법 제5조 제3항), 서류상의 안전 점검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안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실험의 실패는 데이터로 남지만 안전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상처와 법적 책임으로 남기 때문이다.
※ 본 칼럼은 임인영 변호사가 안전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안전신문, 2025.12.22.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