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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 곧 괴롭힘은 아니다

2025.06.30.

노동팀 뉴스레터 제13호 (03) 노동칼럼 


얼마 전 어느 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건강한 기업 문화를 주제로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기업 문화에 관한 여러 주제를 두루 논의했지만, 대상자가 현업 임원이라는 특성상 직장 내 괴롭힘과 저성과자 문제가 많이 논의됐다. 


당시 질의응답 시간에는 서로 조율한 것도 아닌데 두드러지게 반복된 질문이 하나 있었다. 골자를 모아 종합하면, "보직 해임 등이 있고 난 뒤 의욕이 떨어져 만성적 직무태만, 저성과가 문제되는 직원 A가 평가, 직무명령 등에서 미묘한 무시, 경멸 등이 있었다고 하면서 임직원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경우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그것이었다.


이 반복된 질문에 여러 번 답변을 거듭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 생각을 정리해서 이 글에 옮겨 본다. 

 

괴로움이 곧 괴롭힘은 아니다 

 

달리 말해, 업무관계에서 발생한 언동으로 괴로움이 초래됐다고 해서 곧바로 괴롭힘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언동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지 의심스럽다고 해도 말이다. 


현실에서 기업과 인사 담당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는 경우 괴로움을 괴롭힘으로 곧바로 연결해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의 상황을 예로 들면, 직원 A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신고인인 임직원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하지 않은 채 직원 A의 신고 내용과 정황의 진정성이 확인되면 신고를 인정하고 징계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정당한 조치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괴롭힘 제도의 적정한 운영을 방해하는 잘못된 전개다. 괴로움 판단은 사내 갈등에 대한 사실 판단이고, 괴롭힘 판단은 그 사실 판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법적 판단이다. 직원 A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적정한 대응은 이러한 사실 판단과 법적 판단의 차이를 혼동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내 갈등을 초래한 모든 부정적 언동이 곧 괴롭힘은 아니다 


그다음에는 괴로움의 성격을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신고 근거가 된 괴로움과 그 괴로움을 일으킨 언동의 성격을 엄밀히 파악해야 한다. 


예컨대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을 보자. 미세공격은 의도의 유무와 관계없이 가해자가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는 언어적, 비언어적인 개인 간 교류를 말한다. 이러한 미세공격은 상대방에게 적대감, 경멸, 반감을 초래한다. 미세공격은 원래 사회의 소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언동, 즉,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언동에 적용되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결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 직장 내 지위, 세대, 출신, 평가 등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무시나 무례함까지 포함한 언동을 '미세공격성 언동'이라고 하자. 이런 미세공격성 언동은 모두 괴롭힘인 것일까? 


최근 이러한 미세공격성 언동 문제를 다뤘다고 할 수 있는 '미세공격 주의보'를 읽었다. 이 책은 직장 내 성별, 세대, 출신 등으로 인해 초래하는 온갖 불편하고 은근한 무시, 무례함과 그로 인한 괴로움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 기업의 팍팍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 건강한 조직 문화 실현을 고민하는 기업과 인사 담당자가 귀담아들을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미세공격성 언동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괴로움은 기본적으로 개별적 상호 소통과 대화의 질 높이기, 더 크게는 조직 문화 건강성 회복과 대응 감수성 강화를 통한 예방으로 해결해야 한다. 즉, 괴롭힘 제도 밖에서 해결할 일이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가 제도적으로 특별히 금지된 '괴롭힘'으로 발전하는 순간 이후에만 제도가 개입해야 하고, 섣부른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이는 앞선 질문에서 직원 A의 괴로움 호소 계기가 된 평가 등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언동이 과연 미세공격성 언동을 넘어 괴롭힘 제도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생략한 채 곧바로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개입하는 순간 괴롭힘 제도의 적정한 운영에 위험이 닥친다. 실제 '미세공격 주의보'에서도 미세공격성 언동과 그 괴로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도적 개입보다 차별 감수성 강화, 조직 문화적 대응을 제안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괴롭힘의 은밀한 개념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나쁜 교육'에서 미국 대학에서의 정치적 올바름, 안전주의 논의와 관련해 '은밀한 개념 확장(Concept Creep)', 즉 종래 사용되던 개념의 의미가 은연중 확대돼 그 인접 현상까지 포함하게 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이 같은 은밀한 개념 확장이 괴롭힘 제도 운영에서도 발생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법이 정한 기준을 통과하는 괴로움이어야만 괴롭힘이라는 것이 우리 법상 괴롭힘 제도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괴롭힘 제도에서 말하는 괴로움(법 용어상 '정신적 고통')은 모든 괴로움의 부분집합인 특정한 괴로움에 붙여지는 이름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괴롭힘 제도 개입의 근거인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은, 판결상 대체로 괴로움 발생 과정에서 부정적 언동의 지속성과 반복성이 발견되고, 결과적으로 객관성 이 인정되며, 때로는 전체적으로 악의성이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확정되는 것이다. 이렇듯 법원이 판결 시 괴롭힘 판단을 위해 정신적 고통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은 괴롭힘 제도가 다루는 정신적 고통은 모든 괴로움의 부분집합이라는 전제가 투영된 결과다.  


이는 기업이 받는 모든 괴롭힘 신고는 신고인의 과민신고 등을 고려할 때 괴롭힘 인정으로 귀결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오히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일정 정도는 그렇게 돼야 정상이라는 뜻으로도 이어진다. 괴롭힘 신고가 상당수 부정되는 현상을 두고 괴롭힘 제도의 결함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또는 괴롭힘 제도가 가해자 위주로 이루어지는 비정상적 상황의 반영이라고 곧바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제도적 결함, 편파적 조사, 조사 능력 부족, 오판으로 인해 괴롭힘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 특유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라는 전제에서 이해하거나, 미세공격성 언동이 모두 괴롭힘이라고 간주하거나, 괴롭힘의 은밀한 개념 확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생각을 사례에 적용하면, 직원 A에 대한 평가 등 과정에서 무시, 경멸의 언동이 확인되더라도, ①그 언동이 지속·반복됐는지, A의 괴로움이 객관적으로 상당한 것인지, 악의는 없는지를 살펴야 하며, ②그 결과를 토대로 괴롭힘 인정 근거인 정신적 고통의 존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결과 정신적 고통이 부정돼 괴롭힘 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는 괴로움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적정한 문제 해결 방식을 찾아야 한다. 

 

괴로움 중에는 기업의 직접 개입을 통한 해소가 부적절한 괴로움도 있다


최근 많은 기업, 특히 대기업들이 고민하는 직원 A와 같은 사례는, 저성과를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저성과 직원('자기 수용적 저성과자'라 해보자)에 대한 기업의 전형적 대응 방식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 수용적 저성과자는 저성과를 자기 표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통상적인 저성과 직원('자기 분열적 저성과자'라 해보자)과 근본적으로 다른 직원이다. 자기 수용적 저성과자는 기업의 목표와 본인의 목표가 근본적으로 불일치해 개선의 길이 닫혀 있는 것이 결정적 차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자기 수용적 저성과자는 자기 분열적 저성과자를 포함한 다른 직원에 비해 직원 A처럼 평가 등의 과정에서 기업과 갈등을 일으키고 그 결과 괴롭힘 신고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중요한 것은 이때 자기 수용적 저성과자도 실제로 괴롭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괴로움은 자신의 저성과에 따른 기업의 정상적 대응과 본인들 자기정체성의 불협화음인 면도 있다. 본인에 대한 정당한 인사상 불이익을 피하고자 괴롭힘 신고를 이용하려는 기회주의적 의도가 그 괴로움에 섞일 위험도 크다. 어떤 경우에는 신고 내용이 미세공격성 언동 기타 문제성 언동이라고 보기 어렵거나, 최악의 경우 신고가 허위, 음모, 악의적 신고라서 괴로움 자체가 의심되는 경우도 있다. 질의한 직원 A 또한 그런 경우일 수도 있다.


이런 신고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닌 괴롭힘 제도의 공정한 운영, 즉, 정확한 사실관계 인정과 법적 판단으로 공정하게 해결돼야 한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 아니기 때문에, 미세공격성 언동이 곧 괴롭힘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은밀한 개념 확장을 통해 괴롭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결론이다. 이 경우에는 피해자 서사에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 기업의 당당한 태도가 필요하다. 


덧붙여 자기 수용적 저성과자의 괴롭힘 신고 문제는 단순히 그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일단 괴롭힘 제도를 공정하게 운영해 치우치지 않게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전반적인 제도 개선을 시행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공정한 평가제도 운영, 지나치게 관대한 평가 방지, 시의 적절한 인사 조치 등을 통해 평가 공정성과 수용성을 높임으로써 근본적으로 그러한 신고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괴롭힘의 부정이 곧 괴로움의 부정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균형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 즉 기업이 피해자 괴로움의 실상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괴롭힘으로 판단되건 아니건 그 괴로움의 의미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앞서 본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 아니라는 말과 한 몸이며 그 이면이다. 


예컨대 직원 A가 신고한 그대로 무시, 멸시를 받아 괴로웠다는 점이 인정될 여지는 있는데, 신중한 조사와 검토 결과 그 괴로움만으로는 괴롭힘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해보자. 이 경우 신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결과와 무관하게, 미세공격성 언동으로 직원 A가 괴로움을 느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실제 미세공격성 언동 등에 따른 기업 내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 누적과 직원들의 정신 건강 악화는 기업 운영상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신고 처리 끝에 기업이 엄존하는 신고인의 괴로움을 부정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잘못된 인사 관행을 지속하거나, 심지어 신고인을 허위신고로 의심하고 징계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앞서 모든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라고 판단하는 잘못과 마찬가지로 괴롭힘 제도 운영의 실패다. 


매년 증가하는 괴롭힘 신고 건수에서 볼 수 있듯이 직원들의 괴로움에 관한 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흐름이다. 신고인이 느끼는 괴로움의 원인과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고, 종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신고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신고의 원인이 되는 괴로움은 비록 괴롭힘 제도로 해결될 정도가 아니더라도 기업의 개선 노력을 요구하는 현실인 것이다. 


기업은 이런 생소하고 불편한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 그런 괴로움은 부정할 대상, 즉 소음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 건전한 조직 문화를 달성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한다는 요구이자 신호다. 이를 신호가 아닌 소음이라고 무시한다면 그 기업에 건강한 기업 문화 달성은 멀어진다. 기업 임직원들에게 기업의 인사 운영 철학과 원칙에 대한 의심을 낳고, 그것이 기업 조직 문화의 건강성을 근본에서부터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괴롭힘 제도 운영과 입법에는 균형과 중용이 필요하다 

 

기업이 국가처럼 그 구성원의 기본권을 전면 보호하는 것은 현실적 한계가 있다. 모든 사내 갈등으로 초래된 괴로움 해소에 기업이 전면 개입할 수는 없다. 괴롭힘 제도가 그런 개입을 요구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업이 엄존하는 괴로움, 그 괴로움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길이다. 


괴로움 개입 방식을 정할 때는 상호 긴장 관계에 있는 힘이 있다. 그러한 힘을 다루려면 균형(均衡)과 중용(中庸)의 자세가 필요하다. 앞서 논의한 바들은 괴롭힘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에 이런 균형과 중용을 요구한다. 


아울러 균형과 중용의 관점은 기업의 괴롭힘 제도 운영뿐만 아니라, 그 입법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 결과 지금 국회에 10여 개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넘어 괴롭힘 제도를 독립적으로 다루는 단행법 제정을 통해 피해자 보호 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논의까지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을 살펴보면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입법과 제도 개선 목소리는 높지만, 모든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거나 괴롭힘의 은밀한 개념 확장에 우려하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현행법은 지속 반복성, 정신적 고통의 상당성, 악의성 문제를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기업 현실에서 앞서 살핀 오해와 혼란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응책 제시도 필요하지 않을까. 


개정안들을 읽으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필요성과 입법 노력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깊이 동감하면서도, 동시에 괴롭힘 개념의 올바른 정립과 운영에 대한 관심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은 우리 기업과 사회 모두 직장 내 괴롭힘 제도 운영과 입법 전반에 관해 균형과 중용을 떠올릴 때다.


※ 본 칼럼은 조상욱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5년 5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bi_pidx=37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