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공시제, 산업안전은 이제 공개정보다
2026.05.26.
노동팀 뉴스레터 제24호 (03) 노동칼럼
산업안전 규제에서 최근 가장 주목할 변화는 안전보건 관리가 사업장 내부의 점검자료나 사고 이후 제출자료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2026년 2월 19일 공포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주와 공공기관, 지방공사·지방공단에 안전보건 현황을 매년 공시하도록 하는 제10조의2를 신설했다. 이 조항은 부칙에 따라 2026년 8월 1일부터 시행되며 공시 항목에는 안전보건관리체제, 산업재해 발생 현황, 전년도 안전보건 활동실적과 해당 연도 활동계획, 안전보건 투자, 산업재해 재발방지 대책과 이행계획이 포함된다.
이 제도의 의미는 제출할 자료가 하나 늘어났다는 데 있지 않다. 지금까지 안전보건 자료는 내부 결재나 감독 대응을 위해 정리되는 성격이 강했다. 공시제가 시행되면 안전보건 조직, 사고 현황, 예산, 활동계획, 재발방지대책이 매년 외부에 공개된다. 안전보건 수준을 관리하고 있다는 선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어떤 조직이 책임을 맡고 있는지, 어디에 예산이 투입됐는지, 사고 이후 대책이 이행계획으로 이어졌는지가 비교 가능한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고용노동부도 2026년 1월 29일 보도자료에서 안전보건 공시제 도입을 설명하면서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 현황과 재해 예방 노력이 투명하게 공개되면 기업 스스로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높이고 자율적인 산재예방 활동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같은 개정에는 재해 원인조사 범위 확대와 재해조사보고서 공개도 포함돼 있고 재해조사보고서 공개는 2026년 6월 1일부터 시행된다. 사고 전에는 공시자료로 사고 후에는 재해조사보고서로 안전보건 관리의 실제 내용이 외부에서 확인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중대재해 대응 실무에도 곧바로 연결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등에게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재발방지대책의 수립 및 이행을 요구한다. 공시자료가 책임 판단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이 외부에 공시한 안전보건 현황과 실제 현장의 인력 배치, 예산 집행, 재발방지대책 이행 상황 사이에 괴리가 있는지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시에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졌다고 되어 있는데 현장에서는 필수 인력이 공백이었거나, 대책은 공시되었지만 이행 점검이 없었다면, 그 불일치 자체가 관리체계의 실효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쓰일 수 있다.
노동자 참여의 확대도 함께 봐야 한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대표가 소속 사업장의 근로자 중에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감독관이 사업장 감독 시 해당 사업장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참여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고용노동부의 2026년 업무보고 역시 재해조사보고서 공개, 안전보건 공시제 도입,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작업중지권 확대를 통해 노동자의 알권리와 참여권을 강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안전보건 관리가 경영진과 안전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현장의 확인과 참여를 제도적으로 전제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이 준비해야 할 일은 공시 서식을 기다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안전보건관리체제가 실제 조직도, 직무분장, 위임전결 규정, 예산 집행 권한과 일치하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산업재해 발생 현황과 재발방지대책도 단순 통계가 아니라 원인, 조치, 이행 확인의 흐름으로 정리돼야 한다. 안전보건 투자 역시 총액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인력 보강, 설비 개선, 교육, 보호구, 협력업체 안전지원 등 예방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항목으로 구분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공시자료는 대외 설명자료이면서 동시에 내부 통제 점검표이기도 하므로 법무·안전·인사·구매 부서가 같은 기준으로 숫자와 내용을 맞추는 절차가 뒷받침돼야 한다.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으로 전년보다 16명 증가했고 50인 미만 규모, 특히 5인 미만 규모에서 증가가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사업장 감독계획에서 감독 물량을 2025년 5만2000개소에서 2026년 9만개소로 늘리고 산업안전 분야를 5만개소 규모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안전보건 공시제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기업이 안전보건을 어떻게 경영하고 있는지를 외부에 설명해야 하는 새로운 기준이 된다. 결국 핵심은 더 많은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개해도 흔들리지 않을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