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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평가가 서류로 끝나는 순간, 중대재해는 반복된다

2026.03.25.

노동팀 뉴스레터 제22호 (03) 노동칼럼


현장에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확인되는 자료는 대체로 위험성평가표이지만 수사와 감독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되는 지점은 그 평가가 작업 시작 전에 실제로 공유됐는지, 그리고 평가에서 도출된 위험요인이 제거 또는 통제된 이후에만 작업이 이뤄지도록 현장이 관리됐는지 여부다. 위험성평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평가 결과가 작업 통제의 기준으로 기능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1월 20일 A건설사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감독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시로 변화하는 건설현장 작업환경을 고려할 때 위험성평가를 상시, 즉 일일 평가 중심으로 운영해 실효성을 확보하고 위험도가 높은 중점관리대상 작업에 대해서는 조치 결과가 명확히 관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위험성평가를 형식적으로 작성하는 수준을 넘어서 매일의 작업 변화에 따라 위험요인을 재확인하고 통제 여부를 점검하는 운영 체계로 전환하라는 행정적 요구로 해석된다. 감독 결과에 따르면 다수의 현장에서 위험성평가가 월 1회 수시평가 위주로 이뤄지고 있었고 신규작업이나 공정 변경, 장비 투입 등 작업 조건이 달라지는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확인됐다. 또 협력업체가 전산 시스템을 통해 위험성평가를 수행하더라도 위험요인별로 자동 제시되는 감소대책을 현장 여건에 맞게 수정하거나 구체화하지 않아 실제 작업 방법과 평가 내용이 불일치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위험요인을 인식하고 기록하는 단계와 위험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단계가 분리되고 결과적으로 평소에는 작업 관행이 안전 기준을 압도하다가 사고 이후에만 문서가 남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법령 체계에서도 명확히 확인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는 사업주가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요인을 찾아 위험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면서 위험성평가의 결과와 조치사항을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기록·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제37조는 기록·보존 대상에 유해·위험요인, 위험성 결정 내용, 이에 따른 조치 내용 등을 포함하도록 명시하고 해당 자료를 3년간 보존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위험성평가가 단순한 보고서 작성으로 완결되는 제도가 아니라, 조치의 실행과 확인, 그리고 그 이력을 축적하는 과정을 전제로 설계된 제도임을 전제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역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동 조항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조치의 하나로 사업장 특성에 따른 유해·위험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는 업무절차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해당 절차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하도록 규정한다. 특히 산업안전보건법 제36조에 따른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해 실시하거나 실시하도록 하고 그 결과를 보고받은 경우에는 반기 점검을 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어 위험성평가가 안전보건관리체계 점검의 핵심 요소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기 점검 시점에 맞춰 자료를 정리하는 방식만으로는 하루 단위로 변화하는 공정과 작업방법, 인력 구성, 협력업체 투입의 변화를 관리하기 어렵고 이 공백이 곧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법령과 감독 기준을 종합하면 현장에서 요구되는 운영 방식은 비교적 명확하다. 작업 착수 전 그날의 공정과 작업순서, 장비 투입 여부, 동선, 작업방법 변경 사항을 먼저 확인하고 그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거나 증폭된 위험요인을 도출한 뒤 추락·끼임·전도 등 중대재해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은 위험요인부터 개선됐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한 후에만 작업을 개시하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중점관리대상 작업에 대해서는 조치 완료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다음 작업 단계로 진행할 수 없도록 하는 통제 구조를 두고 협력업체가 수행한 위험성평가 역시 원청이 작업 전 단계에서 실질적으로 검토·확인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기록 방식 역시 중요하다. 위험성평가 기록은 유해·위험요인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위험성 결정의 근거와 이에 따른 통제조치, 조치 완료 여부, 잔여 위험과 추가 보완 계획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작성돼야 한다. 특히 공정이나 작업방법이 변경된 날에는 변경 사유와 변경 승인 경로까지 함께 남겨야 동일한 관리 공백이 반복되지 않는다. 반기 점검 역시 형식적인 서류 점검으로 끝나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일일 위험성평가가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지, 조치 완료 확인이 누락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협력업체 작업까지 동일한 기준으로 통제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점검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요인 제거에 필요한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면 즉시 보완이 이루어지도록 경영 의사결정과 연결하는 구조 역시 필요하다.


결국 위험성평가는 사고 이후를 대비한 방어 문서가 아니라 작업 착수를 통제하는 사전 관리 도구로 기능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매일의 작업 변화가 평가에 반영되고 그 결과가 실제 통제로 이어지며 그 과정이 기록으로 축적될 때 위험성평가는 서류를 넘어 현장의 관리 언어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체계적 운영이 중대재해 예방의 출발점이다.


※ 본 칼럼은 윤성현 변호사가 안전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안전신문, 2026.02.02.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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