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판단기준을 변경하여 건설기계 임대인과 근로자인 운전기사가 재해자와 사업장 내의 위험을 공유하는 관계였다면 근로복지공단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본 사례
2026.02.26.
노동팀 뉴스레터 제21호 (02) 최신판례
[대상판결: 대법원 2026. 1. 22. 선고 2022다214040 전원합의체 판결]
1. 사안의 개요
주식회사 A 건설(이하 ‘소외1 회사’)은 고속도로 B교 건설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를 C 주식회사로부터 하도급받은 수급인으로, 철근 운반 작업을 위하여 피고 D로부터 이 사건 지게차를 임차함과 아울러 그가 고용한 근로자(피고 E)로부터 운전노무도 제공받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피고 D는 건설기계 대여업을 영위하는 개인사업자이고, 피고 E는 피고 D에게 고용된 근로자로서 피고 D 소유의 7톤 지게차(이하 ‘이 사건 지게차’)를 운전한 사람입니다.
피고 E는 이 사건 공사 현장에서 소외1 회사 소속의 근로자인 소외2(이하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수신호에 따라 이 사건 지게차를 운전하며 이 사건 재해근로자와 공동으로 철근 운반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운반 중이던 철근 묶음이 피고 E의 과실 등으로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머리 부위에 떨어지는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였고, 원고(근로복지공단)는 이 사건 재해근로자에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험급여를 지급하였습니다.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은 “공단은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에는 그 급여액의 한도 안에서 급여를 받은 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고 정하고, 단서에서 “다만, 보험가입자인 둘 이상의 사업주가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각각 행하다가 그 중 사업주를 달리하는 근로자의 행위로 재해가 발생하면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였습니다. 원고는 피고들이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고, 이 사건 사고가 단서에서 정한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한다고 주장하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판결 요지
원심은 피고들이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며, 같은 항 단서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아, 원고 근로복지공단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를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종전 판례를 변경하여 아래와 같이 산재보험법 제87조제1항 본문의 제3자 판단 기준에 대한 새로운 법리를 설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 E이 이 사건 재해근로자와 위험을 공유하여 피고들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고인 근로복지공단은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여 행사할 수 없다고 보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 중 피고들 패소 부분을 파기자판하였습니다.
가. 이 사건 쟁점 및 기존 법리
① (이 사건의 쟁점) 건설공사의 원수급인 또는 하수급인(도급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경우 재하수급인을 포함하고, 이하 원수급인과 통틀어 ‘원수급인 등’)이 건설기계를 임차함과 아울러 임대인 또는 그 근로자(이하 ‘건설기계 임대인 등’)로부터 건설기계의 운전노무까지 제공받기로 하는 계약(이하 ‘건설기계 임대차 및 운전노무 제공 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건설기계 임대인 등이 건설현장에서 건설기계를 운행하던 중 원수급인 등의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입힌 경우, 건설기계 임대인 등이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② (기존 법리)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의미에 관하여, 대법원은 ‘보험가입자인 사업주와 함께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는 사람’으로서 재해근로자에 대하여 불법행위책임 또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이나 민법 또는 국가배상법의 규정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자를 말한다고 해석하여 왔다(대법원 2008. 4. 10. 선고 2006다32910 판결 등).
대법원은 위와 같은 판단 기준 아래, 건설기계 임대차 및 운전노무 제공 계약이 체결된 사안에서 이 사건과 같이 건설기계 임대인의 근로자가 건설기계를 운전한 경우뿐만 아니라 건설기계 임대인이 직접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노무를 제공한 경우에도 공단의 대위권 행사를 긍정하였다. 이러한 기존의 판단은 우선,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는지를 산재보험료의 부담관계, 특히 업무상 재해의 가해자에 대한 산재보험료 납부의무를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문제로 파악한 것이다. 건설기계 임대인 등은 원수급인의 근로자가 아니고 하수급인에도 해당하지 않아 보험가입자이자 사업주인 원수급인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으므로 ‘직·간접적으로 재해근로자와 산재보험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나. 새로운 법리 – ‘위험 공유’ 기준
①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인지 또는 같은 항 단서에서 말하는 ‘보험가입자인 둘 이상의 사업주가 같은 장소에서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각각 행하다가 그중 사업주를 달리하는 근로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인지는, 재해근로자에 대하여 불법행위 등을 한 사람(이하 ‘가해자’) 중 누구에 대해서까지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하면 보험급여액의 한도 내에서 재해근로자에 대한 최종적인 보상책임을 공단이 부담할지의 문제이다.
②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과 단서는 ‘제3자’의 범위나 ‘하나의 사업을 분할하여 행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으므로, 법원은 산재보험제도의 성격과 목적,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의 입법취지 및 그 전체 내용과 구조, 산재보험의 운용과 재정 부담, 형평의 관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를 합리적으로 해석·적용하여야 한다.
③ 이러한 관점에서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에 따른 대위권의 행사범위는 보험료 부담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 또는 노무제공자들이 동일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즉 사업 또는 사업장에 내재하는 동일한 ‘위험’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하고, 이와 같이 위험을 공유하고 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가해자와 그 사용자는 보험급여를 한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상대방인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④ 가해자가 재해근로자의 사업주와 고용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아닌 때에도 재해근로자와 동일한 사업주의 지휘·명령 아래 그 사업주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재해가 발생하였다면, 가해자와 재해근로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내재하는 위험을 공유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가해자와 재해근로자가 한 작업은 지휘·명령을 한 사업주가 행하는 사업에 편입되어 그 일부를 이루기 때문이다. 원수급인 등의 지휘·명령 아래 건설현장에서 건설기계 운전업무 노무를 제공한 운전기사도 재해근로자와 위험을 공유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해당 건설기계 임대인 등 역시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⑤ 산재보험제도는 보험가입자인 사업주가 납부하는 보험료와 국고 부담을 재원으로 하여 근로자에게 발생하는 업무상 재해라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하는 사회보험제도의 하나이다. 산재보험제도의 이러한 성격에는 업무상 재해의 특성, 즉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의 개인적 부주의를 넘어 사업에 내재하는 위험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점이 투영되어 있다.
⑥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은 보험급여의 수급권자가 다시 가해자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음으로써 이중의 이익을 얻거나 유책의 제3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면탈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보험재정을 확보함에 그 입법취지가 있다(대법원 2000. 8. 18. 선고 2000두918 판결 참조). 가해자는 노무 제공 과정에서 재해근로자와 함께 위험을 공유하고 그 위험의 발현 양상에 따라서는 스스로 업무상 재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인데, 그러한 가해자에 대하여 공단의 대위권 행사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유책한 가해자가 손해배상책임을 면탈하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⑦ 사업에 내재하는 위험이 동일한지, 그 위험을 공유하는지 여부라는 단일한 기준을 중심으로, 동일한 사업주인 원수급인 등의 지휘·명령 아래 재해근로자와 공동작업을 한 경우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서 제외되고, 사업주를 달리하여 동일한 원수급인 등의 지휘·명령을 받지 않는 경우 제3자에는 포함되나 그 단서에 따라 공단의 대위권 행사가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의 전체적인 내용과 구조에 부합한다.
⑧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에는 공단의 보험재정을 확보하려는 취지도 포함되어 있고, 공단이 재해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상대방의 범위를 늘릴수록 보험재정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산재보험의 보험료 부담은 사회보험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정책적·입법적 결단의 문제이고, 그것이 공단의 위험인수 또는 대위권 행사의 범위를 정하는 선결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한편 위와 같이 보더라도, 건설기계 임대인과 건설기계에 관하여 책임보험계약을 체결한 보험회사는 업무상 사고의 가해자가 산재보험법상 제3자에 해당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제3자에 포함되므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다. 이 사건에 대한 판단
이 사건 사고는 피고 E, 소외1 회사와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과실이 경합하여 발생하였다. 이 사건 사고 당시 가해자인 피고 E은 하수급인인 소외1 회사의 지휘·명령 아래 이 사건 사고 현장에서 이 사건 재해근로자와 공동으로 작업함으로써 사업장에 내재하는 위험을 공유하며 업무를 수행하였고, 그 위험이 현실화되어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피고들은 이 사건 사고에 관하여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 본문의 제3자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재해근로자의 피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여 행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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