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과 형사사건이 상호 진행에 미치는 영향은?
2026.02.26.
노동팀 뉴스레터 제21호 (03) 노동칼럼
1. 들어가며
노동분쟁이 발생했을 때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절차는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신청이다. 노동위원회의 판정은 행정처분의 일종이므로, 이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재심을 거쳐 재심판정취소소송(행정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동시에, 대상자로서는 해고 등 인사조치에 대한 무효확인의 소(민사소송)를 직접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직접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사법상 법률관계를 발생 또는 변경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설령 근로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 판결을 선고받아 그 판결이 확정됐다 하더라도 근로자는 그와 별도로 민사소송을 제기해 해고의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대법원 2011. 3. 24. 선고 2010다21962 판결). 그러나 이미 확정된 관련 사건의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력한 증거가 된다고 할 것이어서 합리적인 이유 설시 없이 이를 배척할 수는 없으므로(대법원 2014. 10. 27. 선고 2013두14771 판결), 이 경우 실무적으로는 기일을 추정해 어느 한 쪽의 결과를 지켜보고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결론의 통일을 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분쟁의 당사자가 고려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비단 민사·행정소송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고소·고발을 할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할 수도 있다. 특히 형사범죄에 해당하는 비위행위가 있고 회사 또는 특정 근로자가 피해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형사절차에서도 사실관계 등 일부 쟁점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 모든 절차가 같은 속도로 일관된 결론에 이르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이와 같은 복수의 분쟁절차가 시기를 달리하며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잘 보여주는 선례가 있어, 이번 글에서는 해당 판결(행정사건 및 관련 형사사건)을 중심으로 상호 진행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대상판결: 대전고등법원 2025. 6. 19. 선고 2025누281 판결
이 사건의 원고는 언론사 A(이하 A 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던 직원이다. 원고는 2022년 말경 회식 자리에서 계약직 직원의 어깨와 등을 상당시간 수 차례 접촉하는 직장 내 성희롱을 했고, A 사는 2023. 1. 원고를 징계해고했다(이하 '이 사건 해고').
원고는 징계사유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양정과다를 주장하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구제신청을 인용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A 사의 재심신청을 인용, 이 사건 해고가 정당하다고 봐 초심판정을 취소하고 원고의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원고는 위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으나, 위 결론은 1심(대전지방법원 2025. 1. 8. 선고 2023구합988 판결) 및 대상판결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한편 원고는 위 신체접촉 행위에 대해 형법상 강제추행죄로 기소돼 2023. 12. 벌금 400만 원의 판결을 선고받았고(서울서부지방법원 2023. 12. 6. 선고 2023고단2551 판결), 2024. 11. 항소심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11. 28. 선고 2023노1671 판결).
이제 대상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관련 형사사건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자. 우선 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에는 징계(해고)양정의 판단기준이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자체의 판단기준을 근거로 징계양정의 적정성을 판단했다는 논리적 문제가 있었지만(세부 법리 문제는 이 글의 주된 논점이 아니므로 생략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앙노동위원회가 반드시 지방노동위원회와 결론을 달리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방노동위원회가 2023. 5. 8. 이 사건 해고를 부당해고로 인정하자, 이를 접한 피해자는 일주일 뒤인 2023. 5. 15. 원고를 서울서대문경찰서에 원고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다. 서울서대문경찰서는 2023. 7. 4. 혐의가 인정된다며 원고를 서울서부검찰청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고, 이는 중앙노동위원회의 2023. 8. 2. 자 재심판정서에 다음과 같이 이 사건 해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사정으로 반영됐다.
인정사실
피해자는 초심 지노위에서 2023. 5. 8. 이 사건 근로자(원고)의 해고를 부당해고로 인정하자, 2023. 5. 15. 서울서대문경찰서에 이 사건 근로자를 상대로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으며, 서울서대문경찰서는 2023. 7. 4. 혐의가 인정된다며 서울서부검찰청에 송치했다.
판단(징계양정의 적정성 여부)
피해자는 처음에는 이 사건 근로자에 대해 형사고소를 하지 않았다가 이 사건 초심에서 이 사건 해고를 부당해고로 인정하자 이 사건 근로자에 대한 형사고소를 함으로써 이 사건 근로자에 대한 강한 징계 및 형사처벌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한편 관련 형사판결의 1심이 선고된 시점(2023. 12. 6.)은 대상판결의 1심(접수일 2023. 9. 11.)이 한참 진행 중이던 때였다. 원고의 강제추행죄가 유죄로 인정된 점은 원고에게 불리한 사정이었으므로 A 사는 이 점을 강조했고, 원고는 징계양정 과정에서 (범죄사실보다) 과장된 사유가 참작됐다거나 피해자의 진술에만 기초해 이루어진 형사판결의 사실인정을 그대로 채용할 수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이 설시하며 원고의 주장을 배척했다.
대상판결의 관련 부분
이 사건 해고의 사유가 되는 원고의 강제추행 행위는 확정된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범죄사실과 다름이 없고 달리 위 확정판결의 범죄사실을 배척할 만한 자료가 없다. (중략) 나아가 이 사건 징계양정을 함에 있어서 위와 같이 확정된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범죄사실에 배치되는 사실이 징계양정에 고려됐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해고사유가 아닌 사유 또는 과장된 사유가 참작되어 징계양정이 부당하게 행해졌다는 취지의 원고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중략) 한편, 원고는 피해자의 진술은 과장되고 모호한 반면('수차례', '계속하여') 목격자들의 진술은 명확하고 일관되므로('우발적', '두 차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피해자의 진술에만 기초해 이루어진 형사판결의 사실인정을 그대로 채용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갑 제28 내지 30호증의 각 기재 및 영상을 보더라도, 목격자들이 전체 상황을 빠짐없이 목격한 것은 아니었고 본인들이 원고의 행위 의도 등을 추측해 진술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형사판결의 사실인정과 다른 내용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증거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사실 대상판결에서는 A사 뿐만 아니라 원고 역시 관련 형사판결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자신에 대한 징계양정이 과다하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원고가 인용한 형사판결의 관련 부분 및 원고 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형사판결 1심(위 2023고단2551 판결) 중 원고 인용 부분
양형의 이유
다음과 같은 정상 및 피고인의 나이, 성행,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전후의 정황 등 이 사건 재판과정에 나타난 여러 양형 조건을 종합해 주문과 같이 형을 정한다. (중략)
⁻ 유리한 정상: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면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건 추행의 정도가 크게 중하지 않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위하여 1000만 원을 형사공탁해 피해 일부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
원고 주장의 요지
A 사는 징계기준에서 '징계해직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로서 뉘우치는 정도가 크고 정상을 참작할 여지가 있는 자'를 '정직' 대상으로 규율하고 있다.
관련 형사사건에서 원고가 범행을 인정하면서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점, 추행의 정도가 크게 중하지 않은 점, 피해 일부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는 점이 있다고 판시했음을 고려하면, 징계해직은 매우 과중하다.
물론 대상판결은 원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확정된 형사판결에서 인정된 범죄사실에 의하면 원고의 행위가 '비위의 정도가 중하고 고의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며, 원고가 주장하는 사정들을 그대로 감안하더라도 이 사건 해고로 인해 원고가 입게 될 불이익이 이 사건 해고로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보다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3. 의의 및 시사점
대상판결에서는 지방노동위원회 단계의 판단이 피해자의 형사고소를 촉발하고, 이어진 수사 및 형사재판의 결과가 다시 재심판정과 행정소송에서 징계 정당성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이처럼 복수의 분쟁절차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절차적 연쇄'를 형성한다. 따라서 실무상 당사자(회사, 피해자 등)가 대응할 수 있는 절차가 여러 가지라면 유불리를 고려해 어느 절차를 선행 또는 병행할지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기왕 절차가 시작된 이후라면 이는 더 이상 선택과 집중의 문제가 돼서는 안 된다. 모든 절차에 최선을 다해 임하되, 각 절차에서의 진술 또는 자료 제출이 다른 절차로 전이될 위험과 효과를 꼼꼼하게 살피면서 사건들의 진행 경과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한편 확정된 형사판결의 범죄사실은 노동사건에서 매우 강한 증거력과 설득력을 가지므로(형사판결의 사실인정 기준이 더 엄격할 뿐만 아니라, 형사절차에서는 민사·행정사건과 달리 강제수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별도의 반증이 없다면 민사·행정재판부가 이를 그대로 사실인정의 기초로 삼는 경향이 재확인됐다. 나아가 민사·행정사건이 사실상 '해고의 정당성'을 둘러싼 동일한 사실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과 달리, 형사사건은 피고인의 유무죄만이 다툼의 대상이 되므로 징계 관련 분쟁의 결과를 기다릴 이유도 없고, 진행 속도도 통상 민사·행정사건보다 빠르다. 따라서 형사범죄가 수반된 징계사건에서는 형사판결이 징계의 정당성 판단에 역으로 미치는 효과를 염두에 두고 절차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징계사유를 구체적이고 사실 중심적으로 특정하고, 징계 당시의 사실평가와 이후 형사판결의 내용이 충돌하지 않도록 징계절차 단계에서부터 형사상 구성요건 해당성 및 정황에 관한 기록을 치밀하게 남겨 둬야 한다.
그러면서도, 대상판결은 당사자가 형사판결을 선택적으로 원용하면서 각기 상반된 주장(사용자는 비위행위의 중대성, 근로자는 양형 사유의 유리한 정상)을 하더라도 법원은 형사판결의 '사실인정'과 '양형평가'를 구분해 수용·배척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징계양정에 대한 평가는 결국 개별 사업장의 징계기준과 직무의 특성, 조직 내 파급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로서는 형사판결 등에서 예상되는 법적 효과와 증거가치는 충분히 존중하되, 이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징계권에 대한 사내의 고유한 기준과 건전한 조직질서 확립이라는 목표를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송연창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6년 1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bi_pidx=38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