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된 의제들
2025.10.27.
노동팀 뉴스레터 제17호 (03) 노동칼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비정형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긍정적 취지가 담겨 있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과 적용 방식에 있어서는 기업의 법적 예측 가능성과 경영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적지 않다.
특히 노란봉투법의 내용 중 '사용자'의 개념과 관련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취지의 규정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그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결국 무엇이 '실질적 지배력'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결국 법원이 많은 판결례를 통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판단기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하급심 법원에서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된 몇 가지 사례들을 중심으로 법원이 어떤 의제들에 대해 원청이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인정했는지, 그렇게 본 이유는 무엇인지 간략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모두 확정되지 않은 하급심 판결례들이라는 점에서 향후 아래 판단 내용들은 변경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 실질적 지배력에 관한 법원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를 희망한다.
원청이 개선할 수 있는 작업환경과 시스템
법원은 원청이 실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작업환경과 작업시스템과 관련된 의제에 대해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 배송상품 인수시간 및 집화상품 인도시간 단축 : 이것은 택배기사들이 고객에게 배송할 상품을 서브터미널에서 받아서 자신의 차량에 싣는 시간과 고객으로부터 수거한 상품(집화상품)을 서브터미널에서 간선차량으로 넘겨주는 시간을 줄여달라는 의제다. 이 의제들에 관해 법원은 원청인 A 사(택배업)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는데, 그 이유는 배송상품 인수시간이 택배 물량, A 사가 계약한 간선차량 수 및 출발 시각, A 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협력업체 인력들의 작업 속도, A 사가 소유 및 운영하는 서브터미널 설비, 그리고 분류인력 투입 규모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원은 집화상품 인도시간 역시 원고가 계약한 간선차량의 운영, 협력업체 인력의 관리, 그리고 서브터미널의 설비 등 A 사가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다고 봤다.
▶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배송 물품을 차량에 싣기 위해 서브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각 기사가 사용할 수 있는 개별적인 분류 및 상차 공간(하차장)을 확보해 달라거나 비가 올 때 택배 상품이 젖지 않도록 서브터미널에 상품을 보호할 수 있는 지붕이나 가림막 같은 시설을 설치해 달라는 내용의 의제다. 법원은 이러한 작업환경, 즉 서브터미널의 설비(휠소터, 분류 레일, 택배차량 접안 공간 등)는 A 사가 소유하거나 임차해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A 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터미널 부지 확충은 법령 규제나 현실적 문제로 어렵다"는 A 사의 주장에 대해서 "요구의 현실적인 수용 가능성 여부와 교섭 의무의 유무는 별개의 문제"라고 봤다.
원청이 미리 정해둔 근로조건
법원은 원청이 경제적인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미리 정해둔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도 원청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했다.
▶ 주5일제 : A 사와 개별 집배점주들 간에 체결되는 위수탁계약서의 일부를 이루는 부속계약서에는 주6일제 근무가 규정돼 있고, 변경 가능성은 없으며 집배점주들이 이것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위수탁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었다. 법원은 위 내용 등을 근거로 주5일제 의제에 관해서 A 사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다만 집배점에서 개별 집배점 택배기사들의 근무일을 조정함으로써 부분적 주5일제를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 해결 방안은 아니라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은 점을 감안해 A 사와 집배점주가 중첩적인 지배·결정 권한을 가진다고 봤다.
▶ 급지수수료 인상 : 배송 수수료는 택배운임 구간과 배송지의 등급(급지)에 따라 달리 책정되는데, 택배기사들이 배송 건당 받는 수수료(급지수수료)를 인상하거나 그 기준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의 의제다. 이에 대해서 법원은 A 사가 자신의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정해 둔 기준표에 따라 급지수수료가 정해지고 그 변경가능성이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A 사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봤다. 비록 개별 집배점주들과 집배점 택배기사들이 계약 체결 과정에서 수수료 비율을 달리 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범위에 한계가 있고, 급지수수료가 오르면 택배기사의 최종 수수료도 오르게 되므로, A 사와 집배점주가 중첩적인 지배·결정 권한을 가진다고 봤다.
▶ 사고부책 개선 : 이 의제는 택배 배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도난, 분실, 파손, 오염 등)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누가, 얼마만큼 부담할 것인지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이다. 법원은 '사고부책' 기준 역시 A 사가 개별 집배점주들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정해둔 것이라고 보고 A 사에게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청이 직접 관여ㆍ통제해 온 근로조건
법원은 원청이 장기간에 걸쳐 직접 관여하거나 통제력을 행사해 온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 성과급 지급 : 이 의제는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경영성과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고, 그 지급 기준 및 지급액을 단체교섭을 통해 정해 달라는 내용이다. 법원은 원청인 B 사(조선업)가 사내하청업체들에게 교부할 성과급 총액을 결정하고 그 지급기준을 설정했고, 사내하청업체들은 B 사가 설정한 지급기준에 따라 소속 근로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는 점, B 사와 B 사 노동조합 사이의 단체교섭에서 오랜 기간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성과급 지급을 포함한 처우개선에 관한 사항이 논의되고 합의된 점 등을 근거로 B 사가 이 의제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 학자금 지급 : 법원이 사내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학자금 지급 의제에 대해서도 B 사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B 사는 사내하청업체들로부터 학자금 수요를 취합해 학자금의 총액을 결정하고 이 총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부했으며, 사내하청업체들은 이 금액을 받아 소속 근로자들에게 지급했을 뿐 자체적인 재원으로 학자금을 마련한 것이 없다고 인정됐다. 또한, 법원은 B 사가 자녀 학자금 지원을 포함한 복지제도 운영을 지속하는 것이 숙련된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이탈을 방지하는 등 B 사의 생산 안정화라는 경영상 목적에 따라 기획·결정된 조치라고 평가했다.
원청이 장악하는 안전요소
법원은 원청이 사업장 내 모든 근로자들의 안전과 관련한 요소(안전기준, 생산설비, 작업방식 등)를 전체적으로 장악하고 있다면 사내하청 근로자의 노동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 노동안전 : B 사의 '노동안전 의제'는 B 사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와 재해 발생 시 사고 조사 및 재발 방지 회의(RCA)에도 사내협력사 노조의 참여를 보장해 달라는 내용이다. 법원은 B 사의 다양한 안전 관련 규정들의 적용범위에 사내하청업체와 그 소속 근로자들이 포함돼 있어 사내하청 근로자들도 B 사가 정한 안전관리 절차와 기준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점, 원청과 하청의 작업이 긴밀하게 연계돼 이루어지므로 B 사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전체 인력에 대해 통합적인 안전관리 및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돼 온 점, 사업장 내 설비 전체를 지배하는 B 사와 인력만 제공하는 사내하청업체 사이의 역량 차이 등으로 인해 사내하청업체 자체적인 RCA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만으로는 사내하청 근로자의 노동안전 확보에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위 의제에 대해 B 사가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다고 봤다.
▶ 산업안전보건 : 원청인 C 사(제철업)의 '산업안전보건 의제'는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작업중지권 보장, 유해·위험작업 외주화 금지, 휴게 공간 확보, 작업성 질병 예방 대책 수립 등을 포함한다. 법원은 아래의 점들을 근거로 C 사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봤다. 즉, 사내하청 근로자들에게 내려지는 업무 지시가 C 사로부터 직접 이루어지고 사내하청업체는 업무의 내용이나 방식에 대해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점, C 사가 제정한 안전 관련 지침들은 사내하청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됐고, 위반에 대한 제재 조치와 안전평가도 동일하게 이루어진 점, C 사는 사업장에서 사용되는 생산수단 일체를 소유하고 있어 사내하청업체가 노동안전 문제에 관하여 제시할 수 있는 해결책은 한정적인 점, 사내하청업체의 작업 내용은 C 사의 전체 생산 공정, 설비, 품질 기준, 안전 수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 산업안전 관련 조치(보호구 지급, 위험 설비 개선 등)는 대부분 C 사의 설비, 규정, 예산에 직결된 사항으로, 사내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하거나 집행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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