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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겹의 고단함 : 올바른 사실 판단과 건강한 기업문화

2025.10.27.

노동팀 뉴스레터 제17호 (03) 노동칼럼


건강한 기업문화를 고민하는 기업들 입장에선 모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고단하고 또 고단하다. 얽히고설킨 주장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소음을 뚫고 신호를 가려내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는 불협화음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는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두 겹의 고단함이다. 


이런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본질을 상기하게 하는 사건을 하나 소개한다. 업무와 무관한 갈등 관계에 있는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은 부하직원이 그 상사를 괴롭힘으로 신고한 사건이다. 


사건의 발단 : 갈등에서 신고까지 


어느 공공기관의 상사 S(女, Senior)는 같은 공공기관의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는 배우자(男)와 그 부하직원 J(女, Junior)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의심했다. 실제 그렇게 의심할 만한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관계가 불편해져 S가 J의 집을 찾아가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J에게 더 이상 자기 배우자와 둘만의 대화나 만남을 하지 않도록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는 등 S와 J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S는 J가 출장 보고를 본인에게 직접 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이를 질책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S는 J에게 고함을 질렀고 J가 자신과의 면담을 녹음하는 것을 발견해 녹음을 지우라고 요구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S와 J 사이에는 가벼운 말다툼도 일어났다. 


S는 J에게 고성을 지르고 녹음을 지울 것을 요구한 행동이 부적절했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으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두 사람 사이 갈등의 끝이 아니었다. 


위 갈등이 있은 후, J는 원하는 보직을 받지 못했다. 그러자 J는 S와 그 배우자, 공공기관을 상대로 위 질책을 포함한 여러 사유를 더해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으로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당국에 진정을 거듭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S, 그 배우자, 그리고 공공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 판결은 J가 제기한 소에 대한 2심 법원의 판단이다. 


법원의 첫 판단 : 사적인 복수의 부정 


결론적으로 법원은 J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발생한 질책과 관련해 법원은 S의 질책이 S의 사적 복수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괴롭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S는 사건 당시 J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도 함께 불러 면담을 진행했는데 고성과 부적절한 언급은 인정되지만 그것은 정당한 질책을 하는 과정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욕설 및 심한 폭언을 하거나 모욕을 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위협적인 신체 접촉 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고 했다. 


J의 질책에 대해 법원은 "당시 일회적으로 발생한 것일 뿐 이후 고성이나 폭언 등의 행위가 지속 반복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J는 S가 사적인 복수를 위해 위 질책 등 괴롭힘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J의 불성실한 업무 태도(명백히 업무를 지시했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이후에도 근무 중 또는 회의 중에 불손한 태도로 일관했으며, 위 질책 당시에도 내내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등)를 고려할 때 S의 질책이 "사적인 복수심 등의 감정을 실현하기 위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행위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은 사적 복수심 대신 J에 대한 S의 감정을 "사적인 감정으로부터 연유된 불편함이나 불쾌감"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 감정은 "S뿐만 아니라 J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이를 S만의 책임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J는 위 질책 외에도 본인과 S의 배우자 관계에 대한 모욕적인 메시지 발송, 본인의 인사와 관련한 협박성 메시지 발송, S의 자택 기습 방문, 출장 불참 강요 등 S의 총 8가지 언행을 문제 삼았는데, 법원은 위 질책에 대한 판단과 기조와 같이 괴롭힘을 부정했다. 주목할 점은 S의 의도와 동기까지 폭넓게 살피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S가 J와 배우자에게 동시에 보낸 "퇴사하는 날까지 두 분이 같은 과제 근무하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인사상 불이익 감수를 요구한 것이라는 J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J와 배우자가 매일 접촉하면서 친하게 지낼 경우의 관계 발전에 대한 우려나 불쾌감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 보이므로 불이익 감수 요구가 아니"라고 했다.


반복ㆍ지속성과 악의 : 올바른 판단을 위해 고려할 숨은 축 


이 판결은 괴롭힘 신고를 받는 즉시 객관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사실 판단을 할 책임이 있는 기업에 여러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중 하나는 '반복·지속성'과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의 동기와 의도, 즉 '악의'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지다. 


가해 행위의 반복·지속성이나 악의는 직장 내 괴롭힘 인정을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괴롭힘 사건에는 필수 조건이 아니어도 신고된 언행을 괴롭힘으로 인정하도록 만들거나 반대의 결론을 내리도록 이끄는 사정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반복·지속성과 악의다. 


기업은 괴롭힘 신고를 받으면 서로 다른 감수성, 경험, 그리고 나름의 선입견과 편견을 지닌 당사자들 사이에 일어난 갈등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갈등은 괴롭힘 공식(公式)을 만들어 기계적으로 그 공식을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그 전모를 이해할 수 없다. 괴롭힘 공식을 적용하면 행위 패턴(반복·지속성)과 당사자 내면의 작용(악의의 징표)에서 추단되는 갈등의 배경과 행위의 질 같은 맥락적인 요소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반복·지속성, 악의, 그 외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 등의 사정까지 고려해 내리는 판단은 훨씬 힘들다. 이 경우 조사자의 주관성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선입견과 편견을 이겨내야 하고, 어렵게 판단을 내려도 당사자들이 승복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래서 어렵다. 


그러나 어렵다고 그 길을 가지 않고 쉽게 판단을 하면 괴롭힘 인정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거나 지나치게 좁아진다. 그 어느 쪽도 기업의 사실 판단에 반드시 따라야 할 공정함과 중용에서 벗어난 결과로 바람직하지 않다. 


첫 번째 고단함 : 사실 판단의 무게 


이 판결에서 법원은 괴롭힘 사건의 첫 번째 관문인 공정한 사실 판단을 어떻게 그 고단함을 감당하며 수행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 줬다. 


우선 법원은 괴롭힘 성립 판단에 있어 법문에 명시되지 않은 필수 조건이 아닌 S의 부적절한 처신의 반복·지속성 여부와 악의의 존부를 명확하게 판단했다. 


그뿐 아니라 법원은 사건의 경위(작성일과 작성자도 기재돼 있지 않은 J의 부실한 출장 보고)와 J의 평소 근무태도 같은 사건의 배경까지 고려해 S의 행위가 업무의 적정 범위 내라고 할 수 있는지 폭넓게 고려하는 모습까지 보여 줬다.

 

구체적으로 J가 근무 중 불손한 태도를 보였고, 질책을 할 당시에도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 법원은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이 아니"라고 봤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사적 갈등이 질책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그것만으로 S가 업무와 무관한 사적 복수를 위해 질책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이어갔다. 


기업도 이 판결처럼 법문에 나오지 않는 반복·지속성과 악의를 살피고, 직접 증거가 없더라도 드러난 사실 뒤의 배경, 상호 관계와 맥락을 고려해 명확한 사실 판단을 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원만한 직장 내의 인간관계는 신뢰, 존중, 절제가 제자리를 찾아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괴롭힘 조사자 앞에 놓인 인간관계는 갈등의 이유, 배경, 맥락이 모두 다르다. 그리고 그 다른 요소들이 눈에 보이는 사건의 의미를 결정한다. 조사자는 제각각 다른 것을 각기 다르게 취급해야 한다. 


정도(正道)의 길 : 공감 이후의 공정 

 

또한 이 판결은 사실 판단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기업이 항상 마주하는 문제인 '괴롭힘 사건 조사의 올바른 원칙, 접근법, 자세는 무엇인가?'에 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판결 그 자체로 말없이 해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내용만으로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즉, 이 사건처럼 신고인과 가해자로 지목된 피신고인 사이에 동일한 사건에 관한 주장이 엇갈리고, 그 주장의 객관적 증거를 대기 마땅치 않은 괴롭힘 사건은 흔하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고 해서 사실 판단이 더 쉽지는 않다. 특히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당사자로부터 예상되는 반발(결국 법원에 소를 제기한 이 사건 J의 예를 보라)과 사후적 인사관리, 분쟁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기업은 최종 사실 판단을 내릴 때까지 많이 고심하게 된다. 


이때 기업은 일단 신고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주장을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갈등을 과장하는 신고는 흔히 있다. 그러나 아예 없던 일을 날조하거나 다른 동료 진술이나 증거 조작을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날조, 조작이 드러나면 엄중한 책임 추궁이 뒤따르기에 신고인은 날조, 조작을 함부로 감행할 수 없다. 


기업은 균형을 잡아야 한다. 사실 판단은 공감으로 좌우할 일이 아니다. 공감 이후에는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주장이 갈리는 지점마다 증거를 딛고 한걸음 한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간다. 이 때 사건 경위, 피신고인의 의도와 동기를 포함한 제반 사정을 고려한다. 신고 내용을 처음 접하면서 생긴 선입견과 편견이 진실 발견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이 길은 느리다. 그러나 지름길은 없다. 이는 중용(中庸)의 길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판결은 판결문 길이가 웬만한 단편소설보다 길다. J는 S의 배우자가 본인을 성희롱했다는 주장도 했고, J가 괴롭힘으로 주장한 S의 언행이 면담 질책 외에도 여러 건이 있어 판결문이 길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법원이 그러한 J의 모든 주장에 대한 배경을 파악하면서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폈다는 것이다. 이를 기업의 조사에 빗대면 신고인에 공감하고 주장을 경청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렇게 J의 모든 주장과 사정을 경청한 끝에 법원은 왜 J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는지 증거를 대고, 증거가 없으면 관련된 맥락을 파헤쳐 추정되는 S의 의도와 동기를 또박또박 써 내려갔다. 사건 배후에 있는 S와 J의 감정 성격(사적 복수심이 아니라 불편함이나 불쾌함)까지 규명했다. 


그렇게 완성된 장문의 판결문을 읽으면 건조한 문장 뒤에 숨은 법원의 고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J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판단하기까지 감당했을 망설임의 시간도 엿보인다. 이것은 공정이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여기서 사건을 끝내려는 판단자 책임감의 흔적이다. 


이런 공정을 달성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고심과 망설임은 기업도 감당해야 한다. 너무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예감된다면 더더욱 다시 확인하고 뒤집어 봐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다 보면 평범한 괴롭힘 사건에서까지 사실 판단이 그렇게 어려워야 하나 좀 억울한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어려운 건 어렵게 감당해야 한다. 


두 번째 고단함 : 건강한 기업문화 제도의 과제 


두 번째로 이 판결은 사실 판단의 고단함을 일깨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장 내 괴롭힘 제도를 올바로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 기업이 장기적으로 추구할 목표와 감당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이 사건은 S와 J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때로부터 2심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총 2년 가까이 걸렸다. 그런데 그 결과 무엇이 밝혀졌고 또 무엇이 해결됐나? 


판결은 그저 J의 주장이 고도의 개연성 있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무엇을 위해 그 긴 기간 여전히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법원에까지 와서 다툴 수밖에 없었나? 당사자들은 자책과 쓰디쓴 경험, 고단한 시간 외에 무엇을 얻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이 사건이 남긴 어두운 고심의 시간을 다시 밝히는 답을 필자는 좀처럼 떠올릴 수 없었다. 이 시간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 갈등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고 분쟁으로 발전하기 전 어느 순간에는 원만한 해소의 길로 들어섰어야 했다. 


이 부당한 전개를 막기 위해 기업문화를 책임지고 중재자, 심판자로 관여하고 대상 판결의 피고가 되기까지 한 공공기관은 더 슬기롭게 대처할 길이 없었는가? 길이 있었다면 그 길을 가로막은 장벽은 무엇이었나? 


많은 괴롭힘 사건과 분쟁을 지켜보고 자문하면서 종종 고민하게 되는 이 난감한 질문이 이 판결을 읽으면 다시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또렷해진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 절차, 구성원 개인의 인식, 아니면 기업문화 무엇이 변해야 하나. 혹은 다 변해야 할까. 


당장 눈앞의 괴롭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판단과 원만한 사후조치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지금은 그런 눈앞의 괴롭힘 사건을 넘어 공감, 대응 감수성 등 구성원의 의식을 제고하고 괴롭힘 발생의 사전 예방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본격적인 여정을 서둘러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직접 언급은 없어도 그 여정은 이 판결이 말없이 가리키는 방향이다. 


우리의 직장 내 괴롭힘 제도는 도입할 때부터 예방 아닌 사후 구제, 처벌에 치우친 제도라는 비판을 받았고, 그런 비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런 제도적 결함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 제도를 최전선에서 올바르게 운영할 책임이 있는 기업이 예방 기능 강화와 구성원들의 의식 제고를 위한 고단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 노력에는 경영진과 현장 리더의 대응 감수성 제고, 괴로움이 곧 괴롭힘이 아님을 인식하고 신고 오남용을 스스로 경계하는 인지 감수성 제고, 2차 피해 발생을 막는 공감과 배려 증진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조사 제도 정비, 갈등 감지 시 조직의 개입과 중재 역할 수행 강화 등 제도적 노력 역시 필요할 것이다. 


이런 노력의 성과는 당장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이어지면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이 마주했던 그 장벽은 저절로 낮아질 것이다. 그래야만 부당한 괴로움과 불필요한 분쟁이 부르는 어두운 고심의 시간이 처음부터 기업과 구성원을 비껴간다. 결국 어렵더라도 기업은 건강한 기업문화를 향한 먼 길의 여정을 가야하고 또 다른 고단함까지도 기꺼이 감당해야 옳다. 


기업은 이 두 번째 고단함의 여정을 끝까지 감당해 고단함의 악순환을 벗어나 건강한 기업문화를 달성해야 한다. 처음부터 없어야 할 갈등이 줄어들고 남은 갈등도 사라진 상태가 건강한 기업문화다.


※ 본 칼럼은 조상욱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5년 9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bi_pidx=3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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