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변경에 따라 선행 사용자와의 계약관계가 종료되는 과정에서 선행 사용자가 퇴직금에 대한 안내를 하지 않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퇴직금에 대한 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
2025.07.28.
노동팀 뉴스레터 제14호 (02) 최신판례
[대상판결: 대법원 2025. 5. 29. 선고 2024다294705 판결]
1. 사안의 개요
피고는 장례업, 장례비품 도∙소매 및 대여업 등을 영위하는 회사이고, 원고들은 장례지도사들로서 피고와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2015. 11. 20.경까지 피고 지역본부에서 ‘의전팀장’으로 불리면서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한 사람들입니다.
피고는 장례의전 업무를 주식회사 A(이하 ‘소외 회사’)에 위탁하였고, 이에 원고들은 2015. 11. 21. 피고와의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해지합의’). 그리고 원고들은 같은 날 소외 회사와 다시 의전대행 위탁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의전팀장으로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원고들은 피고와 소외 회사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법인임을 전제로 피고에 대한 관계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를 상대로 피고 및 소외 회사에서의 전체 근무기간에 대한 퇴직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판결 요지
원심은, △ 원고들이 피고와 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장례의전대행 업무를 수행한 기간 동안은 실질적으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이 기간 동안에 대해서는 피고가 원고들에 대한 퇴직금 지급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 원고들이 소외 회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이후 기간에 대해서는, 소외 회사가 외형상으로만 법인의 형식을 갖춘 채 실질적으로 피고 회사에 종속된 법인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 이후의 기간 동안에는 피고로부터 실질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며 피고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에게 퇴직금 지급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편, 피고는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권이 3년의 소멸시효로 소멸되었음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원고들이 소외 회사로 소속이 변경된 후에도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 점, 원고들이 이 사건 해지합의 당시 피고로부터 퇴직금을 전혀 수령하지 않았고 피고 역시 원고들에게 퇴직금에 관한 별도의 안내를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보아 배척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 8. 28. 선고 2022나2049800 판결).
대상판결은, 원고들이 피고와 위탁계약을 체결한 기간 동안에만 피고의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다만,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심과 달리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해당 부분을 원심에 환송하였습니다.
가. 관련 법리
①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커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② 다만, 실정법에 정하여진 개별 법제도의 구체적 내용에 좇아 판단되는 바를 신의칙을 들어 배제 또는 제한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소멸시효 제도는 법률관계 주장에 일정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그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종식시키려는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무차별적∙객관적으로 적용되는 시간의 경과가 1차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설계되었음을 고려하면,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되지 아니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4다71881 판결, 대법원 2016. 9. 30. 선고 2016다218713, 218720 판결).
나. 피고의 퇴직금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부정)
① 원고들이 소외 회사로 소속이 변경된 후에도 종전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였거나, 피고가 이 사건 해지합의 시 원고들에게 퇴직금 관련 안내를 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정만으로, 피고가 시효완성 전에 퇴직금 청구권 행사를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원고들로 하여금 그러한 권리행사나 시효중단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② 원고들과 같은 지위에 있었던 다른 장례지도사들은 이 사건 해지합의로부터 8개월 후인 2016. 7. 21. 피고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2017. 4. 14. 제1심에서 전부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후 그 판결이 확정되었다. 원고들로서는 일부 장례지도사들이 제1심 승소 판결을 선고받을 무렵에는 피고에 대한 퇴직금 청구권이 발생하였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보이며, 객관적으로 원고들의 퇴직금 청구권 행사에 어떠한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③ 피고가 시효완성 후에 원고들에게 시효 이익을 포기하거나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볼 만한 정황은 찾을 수 없으며, 다른 채권자들과 달리 원고들에게 특별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거나 같은 처지의 장례지도사들이 시효완성 후에 피고로부터 퇴직금을 지급받았다는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퇴직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3. 의의 및 시사점
대상판결은 근로자의 퇴직금 청구권에 대한 사용자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 사용자가 근로자의 임금 청구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시효 이익을 포기할 것이라는 신뢰를 부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소멸시효 항변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는 기존 대법원 법리를 재확인하였습니다.
즉, 단순히 사용자가 근로관계 종료 시 퇴직금 등에 대한 안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고, 사용자 측의 적극적인 행위로 인해 근로자가 퇴직금 청구권 행사에 방해를 받은 등의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권리남용이 인정될 수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다만 기업으로서는 분쟁 예방 차원에서 퇴직이나 계약 종료 등으로 인한 근로관계 종료 시 근로자에게 퇴직금 등 금품 청산 등에 대해 명확히 고지하고 정산하는 절차를 거침으로써, 추후 근로자 측에서 사용자의 신의칙 위반 내지 권리남용을 문제 삼는 빌미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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