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도 결국 법 앞에서는 종이에 불과하다
2026.09.29.
노동팀 뉴스레터 제28호 (03) 노동칼럼
임원 승진 인사가 나면 총무팀은 명함부터 새로 판다. 직함이 바뀌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바뀐 것이 명함뿐인 임원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직함은 상무인데 권한과 보고 방식은 팀장 시절 그대로인 경우다. 재직하는 동안에는 이것이 문제되지 않는다. 회사도 본인도 이를 문제 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분쟁은 대개 퇴임과 함께 시작된다. 퇴임한 임원은 계약만료나 위촉계약 해지 통보를 해고라고 주장한다. 임원 재직 기간이 통째로 근로기간으로 인정되면 퇴직금과 연차 미사용수당이 소급돼 쌓이고 해임 통보는 해고가 되어 서면 통지와 '정당한 이유'를 요구받는다. 이 글에서는 임원의 근로자성이 무엇으로 갈리는지, 특히 실무의 통념과 달리 법원이 무게를 두지 않는 징표와 실제로 읽는 징표를 갈라 살펴본다.
판단 본질은 '자율 VS 종속'
회사와 등기임원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위임이다. 상법이 회사와 이사의 관계에 민법의 위임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해 두었다(제382조 제2항). 임원(任員)의 '임'은 위임(委任)의 '임'과 같은 글자다. 말 자체가 이 관계의 원형을 담고 있는 셈이다. 수임인은 맡겨진 사무를 자기 판단으로 처리하고, 근로자는 종속적 지위에서 지시받은 노무를 제공한다. 결국 쟁점은 '자율이냐 종속이냐'다.
과거 판례를 보면, 대법원은 지위나 명칭이 형식적·명목적인 것에 그치고 대표이사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노무를 담당하며 보수를 받아왔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본다. 등기임원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어 상법상 권한과 책임을 지므로 근로자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등기부에 이름이 올라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대표이사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하는 '명목상 이사'라면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다. 비등기임원은 근로자라고 인정되는 경우가 비교적 잦다. 하지만 비등기임원이라도 독자적 권한, 의사결정 과정 참여, 직원과 구별되는 처우가 확인되면 근로자성은 부정되고 있다. 등기 여부는 출발점일 뿐 결론이 아니다.
근로소득세·4대보험...인정될까?
실제 분쟁에서 회사가 흔히 내미는 증거가 있다. 임원 보수에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았다거나, 반대로 근로자 측이 매월 고정급을 받았고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정작 대법원은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해당 사항을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므로 그러한 점들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세법상 임원의 보수도 근로소득으로 원천징수된다. 임원도 통상 매월 고정 보수를 받고 근로자도 성과급을 받는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대표이사도 가입한다. 어느 쪽에나 있는 징표는 어느 쪽도 증명하지 못한다. 그나마 변별력이 있는 것은 고용보험이다. 임원은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위촉 후에도 피보험자격이 유지되고 있다면 회사 스스로 근로자로 취급해 온 흔적이 된다.
법원이 실제로 보는 3가지
이제는 법원이 판단의 근거로 삼는 3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권한의 실질이다. 전결권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담당 부문의 예산·인사를 상위 결재 없이 움직일 수 있는지, 이사회나 경영회의 참여가 의결인지 배석인지를 본다. 팀장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전결 범위에 직급만 얹혀 있다면 여전히 근로자로 판단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지휘·감독 여부다. 대표이사나 상위 임원, 나아가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오너의 일상적 지시를 받는지가 관건이다. 수임인에게도 위임사무의 처리 상황을 보고할 의무는 있으므로 주간회의 보고 자체가 결정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업무의 방식과 순서까지 지시받고 출퇴근 등의 근태도 일반 직원들과 동일하게 관리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셋째, 관계의 단절이다. 직원에서 승진한 임원이라면 사직 처리와 퇴직금 정산을 거쳐 위임계약을 새로 체결했는지가 가장 앞선 질문이다. 호칭과 명함만 바뀌고 서류가 그대로라면, 법원은 근로관계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 것으로 본다. 승진형 임원일수록 절차를 생략하고 싶은 유혹이 크지만 바로 그 서류가 가장 무거운 증거가 된다.
기업이 해야 하는 일은?
그렇다면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기업의 점검 항목은 다음과 같다.
임원 위촉일에 사직서 수리·퇴직금 정산·위임계약서 체결의 세 가지를 묶어 처리한다. 또, 위임전결규정에 임원의 전결 범위를 직원과 구별되게 명시하며, 경영회의 참석과 의결 내용을 기록으로 남긴다. 보수나 복리후생도 직원 연봉 테이블이나 취업규칙을 그대로 준용하지 않고 임원보수규정 등과 같이 별도의 기준을 적용한다. 임원의 결재가 상위 결재를 위한 통과의례에 머물러 있다면 아무리 정비된 서류도 실질을 이기지 못한다.
임원이라는 지위는 위촉장에 인쇄되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절차로 증명된다. 이를 갖춘 회사에게 임원 제도는 경영의 도구로 남지만, 명함만 바꾼 회사에는 몇 년 뒤 소송의 쟁점이 되어 돌아온다. 법원은 명함이 아니라 결재선을 읽는다.
※ 본 칼럼은 박재우 변호사가 한국경제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한경 Law&Biz, 26.08.13.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8127594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