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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사건, 법원은 무엇을 ‘진정한 반성’으로 보고 있는가

2026.09.29.

노동팀 뉴스레터 제28호 (03) 노동칼럼


Ⅰ. 들어가며


회사의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 경영책임자인 대표이사 A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산업재해치사), 현장소장(안전보건총괄책임자)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의 혐의로 기소됐다. 변호인은 대표이사 A에게 반성문을 준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서둘러 수립·이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데 대표이사 A는 문득 의문이 든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반성문 몇 줄을 법원이 과연 그대로 믿어 줄까? 이미 사고가 발생한 뒤에 황급히 마련한 재발 방지 대책이 실제로 양형에 영향이 있을까?


이하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첫 판결이 선고된 2023. 4. 6.부터 2026. 5.경까지 선고돼 확인할 수 있는 판결들의 '양형의 이유 부분'을 분석해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Ⅱ. 양형의 이유에 나타난 주된 감경 사유


분석 대상 판결 93건 중 양형의 이유가 확인되는 78건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유족과의 합의 내지 처벌불원은 75건(약 96%)에서 언급돼 사실상 모든 사건에서 제1의 감경 요소로 기능했다. 피고인의 반성 내지 범행 인정은 59건(약 76%)에서, 재발 방지 대책 등 사고 후 개선 노력은 44건(약 56%)에서 유리한 정상으로 적시됐다. 재발 방지 대책은 절반 남짓의 판결에서만 언급됐으나, 뒤에서 살펴보듯 단순히 독립된 하나의 감경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반성이 진정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징표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상당수의 판결에서는 피고인이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의 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피고인들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피해자의 유족들과 원만히 합의한 점,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2024. 5. 2. 선고 2024고단89 판결, 확정)과 같이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은 하나의 묶음으로 설시되고 있다.


Ⅲ. 법원은 '반성의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법정에서 '반성의 진정성'은 결국 피고인 내심의 의사 해석에 관한 문제다. 법원은 무엇으로 반성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있을까. 선임한 변호인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해 멋진 문장으로 반성문을 작성한 다음 법원에 제출하는 것으로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실제로 한 사건에서는 경영책임자가 반성문을 자필로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지만, 법원은 이를 감경 요소로 고려하지 않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잘 작성된 반성문의 제출이라는 형식만으로는 반성의 진정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본 것으로 이해된다.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판결은 피고인들이 사고 발생 직후 방호덮개와 안전 펜스를 설치하고, 인터락을 설치했으며 위험성평가와 작업매뉴얼에 해당 위험을 추가하고, 산업안전보건법령 및 중대재해처벌법령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업무 평가, 교육, 법규 준수 평가 등도 이루어지도록 체계를 정비한 사실을 나열한 다음, "이러한 사정들에 비춰 보면, 피고인들은 이 사건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시했다(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 2025. 2. 18. 선고 2024고단736 판결, 확정). 반성의 진정성을 단순히 반성문 내지 피고인의 진술이 아니라 사고 발생 이후 이루어진 여러 가지 재발 방지 대책으로부터 추단한 것이다.


한편, 반성이라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언급 없이, 사고 발생 이후 이루어진 재발 방지 대책의 실적이 양형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광주지방법원은 "이 사건 사고 발생 후 피고인 회사와 피고인(경영책임자)을 비롯한 임직원들은 나름대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고(지게차 면허 보유자가 4배 정도 증가했고, 피고인 회사가 원청으로부터 산업안전개선 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더욱 힘쓸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실적을 유리한 정상으로 적시했다(광주지방법원 2024. 9. 26. 선고 2024고단1482 판결, 항소심에서 경영책임자에 대한 부분만 파기자판 후 미상고 확정). 결국 위 서산지원 판결이 사고 후 이루어진 재발 방지 대책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반성을 추단한 것이라면, 위 광주지방법원 판결은 반성이라는 언급 없이 진정성 있는 반성의 실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즉, 법원에게 있어 진정성 있는 반성이란 그 자체가 독립된 실체라기보다 범행 인정, 재발 방지 대책 등 외부적 징표들을 통칭하는 이름표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Ⅳ. 재발 방지 대책의 두 가지 기능


재발 방지 대책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제1호 판결에서부터 주된 감경 사유로 설시되고 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피고인 회사의 경영책임자가 "향후 이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고 있는 점"을 유리한 양형 인자로 명시했다(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3. 4. 6. 선고 2022고단3254 판결, 확정). 즉, 사고 발생 후의 다짐과 계획조차 구체적이라면 유효한 재발 방지 대책으로 평가해 유리한 정상으로 본 것이다.


아울러 충실한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을 위한 경영책임자의 노력은 유족과의 합의의 매개로도 기능할 수 있다. 광주지방법원은 "피고인들은 피해 근로자의 유족에게 진지하게 사과하고, 실질적인 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력함으로써 원만히 합의했고, 유족들은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고 설시했다(광주지방법원 2025. 1. 7. 선고 2023고단5641 판결, 확정). 유족과의 합의 내지 처벌불원이 사실상 모든 사건에서 제1의 감경 요소에 해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발 방지 대책은 그 자체의 효과에 더해 처벌불원을 이끌어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Ⅴ.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의 한계


그러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결과가 특히 중대한 사안에서는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23명이 사망한 리튬 일차전지 폭발 사고에 관한 수원지방법원 판결은 일부 유족과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유족의 처벌불원이 사망해 어떠한 의사표시도 할 수 없는 망인의 의사를 대체할 수 없을뿐더러, 합의한 유족들조차 한국에 머물며 장기간에 걸친 법적 분쟁을 버틸 수 없거나 경제적 형편 등 여러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 등을 들며 피고인들이 이 사건 화재 사고에 대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고 그에 따른 법적 처벌을 받아야만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등으로 현재의 피해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사정도 존재한다"는 이유로 유족들과 합의했다는 사정을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로 고려했다(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판결). 다만, 이어진 항소심에서 수원고등법원은 "합의한 피해자 측이 합의 이후에도 피해 감정을 표출하고 처벌을 탄원한다는 등의 사정을 이유로 피해자 측과의 합의를 제한적으로 양형에 반영하게 되면, 오히려 피고인으로 하여금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급기야는 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이는 결국에는 피해자 측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한다"고 판시해 합의를 유리한 양형요소로 판단했다(수원고등법원 2026. 4. 22. 선고 2025노1502 판결, 상고심 계속 중). 그러나 항소심 역시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의 진정성을 양형의 중요한 요소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원심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의 세 가지 요소가 진정성 있게 갖춰지자 제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음에도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가 있다. 울산지방법원은 제1심에서 기계 방호장치의 결함이 정밀안전점검을 통해 반복적으로 지적됐음에도 방치된 사정을 무겁게 봐 "피고인들이 이 사건 사고 이후에 신속하게 피해자의 유족과 합의하고 시정조치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집행유예로 선처할 수 없다"고 설시하면서 경영책임자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울산지방법원 2024. 4. 4. 선고 2022고단4497 판결).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피고인들이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에게 상당한 금원을 지급하고 원만히 합의해 유가족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개선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보이고, 유사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울산지방법원 2025. 10. 22. 선고 2024노570 판결, 확정).


Ⅵ. 마치며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에 대한 직접적인 양형기준은 없고,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을 참고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2026. 4. 27. 출범한 제10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7. 3.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의 양형기준을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위 양형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에 대한 양형기준 설정 범위 추가 근거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로도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 사망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양형기준 부재로 인한 양형 편차, 높은 집행유예율, 낮은 형량이 지적되는 등 양형기준 설정에 대한 국민적 요청이 높으며, 엄중한 처벌을 통해 법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양형기준이 시행되면, 앞서 살펴본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이라는 감경 사유의 진정성과 실질을 따지는 법원의 심사는 지금보다 한층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선고된 여러 판결이 공통적으로 설시하듯,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경영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법이다. 이러한 취지를 고려하면, 법원이 사고 발생 이후 경영책임자의 반성을 단순한 반성문을 넘어 시스템의 개선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태도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과 안전보건관리체계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시점을 달리해 부르는 두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를 사고 발생 이전에 갖춰 두면 '안전보건관리체계'이고, 사고 발생 이후에 갖추면 '반성-(합의)-재발 방지 대책'이 된다. 경영책임자가 중대재해 사고 발생 이후 황급히 반성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기보다는 중대재해 사고 발생 전에 충실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기를 기대해 본다.


※ 본 칼럼은 이승현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6년 8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bi_pidx=3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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