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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과 산업안전보건: 예방의 관점에서

2026.07.27.

노동팀 뉴스레터 제26호 (03) 노동칼럼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해 왔으며 정신건강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직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도한 업무 부담, 조직 내 갈등, 괴롭힘, 폭언과 같은 요인은 근로자의 정신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증, 적응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어 산업재해 보상을 받는 사례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안전과 보건의 개념을 단순히 신체적 위험에 한정하지 않는다. 사업주는 근로자의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최근에는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 문제 역시 중요한 안전보건 이슈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은 더 이상 단순한 노사갈등이나 인사관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안전보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발생한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위험성평가는 원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다.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찾아내고 그 위험의 크기를 평가한 뒤 개선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위험성평가는 주로 추락, 끼임, 화재, 화학물질 노출과 같은 물리적·화학적 유해위험으로부터 신체적 건강을 예방하는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반면 직장 내 괴롭힘은 정신적 유해위험의 성격을 갖는다. 위험의 원인이 기계나 설비가 아니라 사람과 조직, 관계와 문화에 존재한다. 이 때문에 단순히 현재의 위험성평가 양식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항목 하나를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이를 예방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실제로 현재 활용되는 직장 내 괴롭힘 측정도구들도 대부분 개인의 피해 경험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특정 근로자가 부정적 행위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 피해를 경험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장 전체의 위험요인을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피해자를 식별하는 도구이지 위험을 식별하는 도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을 위험성평가의 영역으로 가져온다면 접근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평가의 대상은 특정 개인의 피해 경험이 아니라 조직적 위험요인이 되어야 한다. 예컨대 과도한 성과압박, 불명확한 업무분장, 관리자 중심의 권위적 의사소통, 갈등조정 체계의 부재, 고립된 근무환경, 피드백과 지원의 부족과 같은 요소들이 괴롭힘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요인으로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독일은 이미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상(Arbeitsschutzgesetz) 위험성평가 항목에 직장 내 심리적 스트레스(psychische Belastungen bei der Arbeit)를 포함하였다. 이후 독일의 위험성평가 체계는 물리적 위험뿐 아니라 상급자와의 관계, 조직 내 갈등, 언어적 공격, 사회적 지원 부족 등 사회심리적 위험요인까지 평가대상으로 확대되었다. 


다만 독일 사례를 그대로 한국에 이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독일은 위험성평가, 산재예방전략, 감독체계, 노사참여 구조가 장기간에 걸쳐 함께 발전해 왔다. 반면 한국의 위험성평가는 여전히 물리적 위험 중심의 제도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을 위험성평가에 포함시키려면 단순한 체크리스트 추가가 아니라 새로운 평가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를 조직문화 진단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해서도 곤란하다. 조직문화 진단은 기업문화 전반을 평가하는 것이지만 위험성평가는 궁극적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제도이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 위험성평가는 조직문화 자체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힘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조직적 위험요인을 식별하고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은 노동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경계에 놓여 있는 과제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제도가 사건 발생 이후의 대응에 집중해 왔다면 앞으로는 발생 이전의 위험을 어떻게 발견하고 줄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위험성평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의무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예방 중심의 체계를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 본 칼럼은 김수현 노무사가 안전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안전신문, 2026.06.12.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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