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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적용 범위

2026.07.27.

노동팀 뉴스레터 제26호 (03) 노동칼럼


Ⅰ. 들어가며


최근 일부 하급심 판결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성별 차별을 넘어 고용관계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적·포괄적 차별 금지 규범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규직 전환자와 기존 정규직 사이의 처우 격차, 직군·직렬 간 임금 차이, 임용경로의 차이에서 비롯된 처우 차이 등에서 동 조항이 원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①한국 노동법의 입법 체계, ②동 조항의 문언·체계·입법 연혁, ③안동대 판결(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5두46321 판결) 및 그 이후 하급심의 흐름, ④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시 구조, ⑤형사처벌을 수반하는 차별 금지 법규의 죄형법정주의, ⑥직무급제를 전제로 한 동 조항과 연공급 중심 한국 임금 체계 간의 정합성 등의 모든 측면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이하 차례로 검토한다.


Ⅱ. 우리나라 노동법의 차별 금지 규범 체계


우리나라의 노동 관련 법령은 개별법에서 차별 사유와 영역을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규율한다. 근로기준법 제6조(성별·국적·신앙·사회적 신분), 기간제법 제8조와 파견법 제21조 제1항(고용 형태), 연령차별금지법 제4조의4(연령),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장애),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내지 제11조(성별 등)가 각각 보호 사유와 영역, 비교대상, 제재 강도를 차별화해 규율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모든 영역의 차별을 포괄하는 이른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6년 정부 발의 이래 다수 발의됐으나 입법되지 못했다. 이는 차별의 사유와 영역을 일반화해 규율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입법적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입법 현황 아래에서 특정한 개별적 차별금지규범을 그 본래 규율 대상이 아닌 영역으로 확장 해석하는 것은 입법기관이 입법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사법(司法)이 우회적으로 대체하는 것과 같다.


Ⅲ.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의 문언ㆍ체계ㆍ입법 연혁


1. 문언과 체계


남녀고용평등법 제1조는 '고용에서 남녀의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제2조 제1호는 차별을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채용·근로조건을 다르게 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이 법이 보호하는 차별 사유의 외연은 문언상 명확히 한정돼 있다.


즉, 제8조는 제2장 제1절 '남녀의 평등한 기회 보장 및 대우'에 속하며, 제7조(모집·채용), 제9조(임금 외 금품), 제10조(교육·배치·승진), 제11조(정년·퇴직·해고)와 병렬적으로 배치돼 있다. 이러한 구조는 제8조가 임금 영역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화 규정의 하나임을 분명히 한다. 임금 분야만을 떼어내어 성별을 초월하는 일반 원칙을 선언한 규정으로 해석할 경우 같은 절 다른 조문들과의 체계 정합성이 무너진다.


2. 입법 연혁과 직무 가치 개념의 특수성


남녀고용평등법은 1984년 비준된 국제연합(UN) 여성차별철폐협약의 국내 구현을 직접적 배경으로 1987년 제정됐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현행 제8조 제1항)은 1989년 개정으로 신설됐다. 신설 당시 입법자료는 동 원칙이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적 저임금 해소'와 '여성차별철폐협약 제11조의 포섭'을 위한 것임을 명시했다. 입법자가 이후 동 원칙의 적용 범위를 성별 외 영역으로 확장하려 한 시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히 직무 가치 개념을 활용해 차별을 규율하는 조항은 우리 법체계상 남녀고용평등법이 유일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성별 직무 분리로 인해 남녀 근로자가 동일한 직무에서 비교되는 사례가 줄어들고 여성이 주로 수행하는 직무일수록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구조적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비교가능한 가치를 가지는 상이한 노동까지 비교 대상으로 끌어들이는 도구로 고안된 법리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이라는 표현이 다른 개별적 차별금지법(근로기준법 제6조, 기간제법, 파견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등)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러한 법 해석을 뒷받침한다.


Ⅳ. 판례의 흐름


1. 안동대 판결의 사정 범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일반화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가장 빈번히 원용되는 것이 안동대 판결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국립대학교 총장이 '행정청의 지위'에서 행한 강사료 차등 지급이라는 공법상 처분의 위법성을 판단한 사건이다. 판결문이 "국립대학의 장으로서 행정청의 지위에 있는 피고로서는 사회적 신분이나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을 하여서는 아니 됨은 물론 그 밖에 근로계약상의 근로 내용과는 무관한 다른 사정을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판시한 데에서 보듯, 그 논리는 행정청이 헌법상 평등 원칙의 직접 수범자라는 특수성에 기초한다. 판시 중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의 인용은 헌법상 평등 원칙을 근로관계에서 구체화한 예시로 활용된 것에 그친다.


2. 안동대 판결 이후 하급심


안동대 판결 이후 다수의 하급심은 동 조항의 적용을 성별 임금 차별에 한정한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혀 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9. 9. 27. 선고 2017가합567776 판결(정년, 비정년트랙 교원 임금 격차)과 수원지방법원 2025. 3. 27. 선고 2023가합21248 판결(입사 시기에 따른 기본급 차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수원지방법원 판결은 ①남녀고용평등법의 입법 목적, ②형사처벌 대상 조항에 요구되는 죄형법정주의, ③안동대 판결이 사법관계에서 성별 외 사유에 동 조항 위반을 명시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동 조항을 일반적 차별 금지 규범으로 확장·유추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임금피크제 사안에서도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8. 16. 선고 2023가합54271 판결과 서울북부지방법원 2024. 8. 28. 선고 2022가단152088 판결이 같은 취지로 판단했다.


동 조항을 성별 외 영역에 적용한 일부 하급심도 그 실질을 살피면 일반화의 근거가 되기 어렵다. 이들 판결은 대체로 ①국가·지방자치단체 등 공법상 주체가 당사자인 사건이거나, ②결과적으로 차별이 부정된 사건이거나, ③단체협약 등 별개의 규정에 의해서도 청구가 인정될 수 있었던 사건에 해당한다.


3. 대법원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의 판시 구조


이러한 흐름은 대법원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층 분명해진다. 국도관리원이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과의 처우 격차를 다툰 이 사건에서 다수의견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가 정한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결국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일부 재판관의 반대의견과 달리 남녀고용평등법과 같이 포괄적 차별 금지 규범이 있음을 전제로 동일 근로자 집단의 존재를 판단하는 접근을 취하지 않았다. 이는 대법원이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를 개별 고용관계에 직접 적용되는 일반적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Ⅴ. 죄형법정주의와의 정합성


남녀고용평등법은 제8조 제1항 위반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제재를 규정한다. 따라서 동 조항의 해석에는 명확성 원칙과 유추해석 금지 원칙이 작동한다. 대법원이 거듭 확인한 바와 같이 동일가치의 노동이란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남녀 간의 노동을 전제로 한다(대법원 2003. 3. 14. 선고 2002도3883 판결, 대법원 2013. 3. 14. 선고 2010다101011 판결). 동 조항을 성별 외 모든 차별 영역에 일반화하는 해석은 형사처벌이 예정된 법규를 명문 규정 없이 확장하는 결과가 돼 죄형법정주의의 기본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


Ⅵ. 임금 체계와의 부정합성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그 개념상 직무의 상대적 가치에 따라 임률을 정하는 직무급제를 전제로 한다. 직무급제에서는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성별·근속연수·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동일한 기본급을 받게 된다.


반면 우리나라 다수의 기업은 호봉제로 대표되는 연공급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연공급 체계에서는 동일한 직무 가치를 가진 근로자라 하더라도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 제도 설계상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임금 체계상 현실을 도외시한 채 동 원칙을 일반적·포괄적 차별 금지 규범으로 적용한다면, 노사가 단체협약·취업규칙·개별 합의를 통해 형성해 온 호봉 체계 전반이 법적 불안정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사법(司法)이 임금 체계 개편이라는 입법적·정책적 결단을 해석으로 대체하는 결과이며, 노사 자치의 영역을 과도하게 잠식할 우려가 있다.


Ⅶ. 나가며: 법 해석과 정책의 경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모든 유형의 차별 영역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는 정책적·입법적 지향으로서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임금 격차 해소와 비정규직 보호 강화는 한국 노동시장이 마주한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법 해석 단계에서 이러한 지향을 그대로 법조문에 대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차등 처우가 위법한 차별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①해당 차별이 어느 법령에서 금지하는 사유에 포섭되는지, ②본질적으로 동일한 비교 집단이 존재하는지, ③그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결여돼 있는지를 개별 법령의 문언과 체계 안에서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 단계를 건너뛰고 노동의 가치가 동일하므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단정하는 논증은 현행 법령이 보호하는 범위와 입법자가 장래 추구할 수 있는 정책적 이상을 혼동하는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 제8조 제1항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그 제정 목적과 취지, 연혁, 법체계 내 위치, 형사처벌 조항의 존재, 판례의 흐름에 비춰 볼 때, 성별을 이유로 한 임금 차별의 금지에 그 적용 범위가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다른 영역의 차별 시정은 별도의 입법과 정책, 또는 해당 영역에 마련된 개별 차별 금지 규범을 통해 해결돼야 한다. 임금 체계의 안정성, 법적 예측 가능성, 노사 자치의 존중이라는 관점에서도 동 조항의 적용 범위는 입법자가 그어 놓은 경계 안에서 해석돼야 한다.


※ 본 칼럼은 박재우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6년 6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bi_pidx=3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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