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
2025.12.23.
노동팀 뉴스레터 제19호 (03) 노동칼럼
I. 들어가며
대법원 2024. 12. 19. 선고 2020다247190 판결(이하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이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 중 '고정성'을 제외시킴에 따라 기존에 고정성을 결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통상임금성이 부정되던 임금 항목들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다. 그러나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의 논의들은 주로 고정성 개념(특히 재직 조건부 임금 및 근로일수 조건부 임금)에 치중한 탓에 나머지 통상임금의 개념적 징표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재직 조건이 부가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통상임금의 범위에서 제외돼 왔던 복리후생적 급여의 통상임금성 판단에 있어서는 앞으로 소정근로 대가성 인정 여부가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글에서는 재직 조건부 복리후생적 급여 중에서도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과 관련해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의 개념 및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란
1. 개인연금 제도의 도입 및 연혁
우리나라는 1994년에 '연금저축 세제지원 제도'[구 조세감면규제법(1994. 3. 24. 법률 제4744호) 제80조의2]의 도입을 통해 처음으로 개인연금 제도를 도입했으며, 개인연금 가입자에게 보험료 일정액의 소득공제 및 연금 수령 시 전액 비과세 혜택을 지원함으로써 개인연금 가입을 장려했다. 2013년에는 연금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이 소득세법으로 이전되고, 2014년 구 소득세법(2014. 1. 1. 법률 제12169호) 제59조의2가 개정됨에 따라 보험료 소득공제가 현재와 같은 세액 공제 형태로 전환됐다.
정부는 이후로도 세액 공제율을 확대하는 등 여러 차례 세제 개편을 통해 구조개혁 의지를 보여줬으나, 금융감독원의 2024년 연금저축 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중 약 26%만이 연금저축에 가입했으며, 계약당 평균 연금 수령액은 연 295만 원으로 개인연금 보험이 노후 소득 보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2.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의 의의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는 기업이 소속 근로자의 개인연금 가입 및 유지를 전제조건으로 해 불입액을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정부의 개인연금 가입 유도를 위한 지속적 세제 혜택 개편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스스로 미래를 준비해 사적연금을 준비하는 비율이 여전히 낮은 가운데 기업이 소속 근로자의 개인연금 불입액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근로자 개인의 노후 대비 보장을 통한 복지 증진 차원을 넘어 국가를 대신해 공적연금 제도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이는 근로자의 임금 상승이나 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근로자 개인의 선택에 기초해 그 수혜 여부 및 수준을 달리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선택적 복지제도' 사례에 해당하는 것으로도 이해된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개인연금 제도 가입 장려에 발맞춰 1994년부터 일부 기업들이 개인연금 지원 규정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1995년에는 삼성그룹이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개인연금 제도에 가입한 임직원에게 해당 임직원이 납부해야 할 불입액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지원하는 형태의 매칭 지원 방식이었다. 연혁적으로 우리나라 임금 체계는 대기업 또는 공공부문에서 임금 항목이 신설되고, 이것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대되는 형태로 변화해 왔는데, 개인연금 회사 지원 제도도 이와 같이 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으로까지 점차 확대돼 시행돼 온 것으로 보인다.
Ⅲ.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 관련 판결
1.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전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 다수의 하급심 판례들은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 통상임금성에 포함될 수 없다고 판단해 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수원지방법원 2024. 7. 24. 선고 2020가합34526, 2021가합17689 판결은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지급 조건인 개인연금 보험의 가입 및 유지가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 무관한 조건인 점(소정근로 대가성 결여) ▲기왕에 근로를 제공했던 사람이라도 지급일에 재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지급하지 않는 반면 지급일에 재직하는 사람에게는 기왕의 근로 제공 내용을 묻지 않고 이를 모두 지급된 점(고정성 결여)을 주된 논거로 들어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 수원지방법원 2021가합17689 판결을 비롯한 여러 판결들이 위와 같이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 소정근로 대가성 및 고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며 통상임금성을 부정했다. 그 외에도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 지급 의무가 있는 금원이라기보다는 사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은혜적으로 지급되는 점을 들어 임금성 자체를 부정한 판결도 발견되며(서울고등법원 2015. 5. 1. 선고 2014나49267 판결) ▲지급 요건을 충족하는 사원이라도 정해진 시기와 방법에 따라 신청을 해야만 지급받을 수 있는 점 ▲개인연금 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중도 해지한 근로자들에 대해 별도 수당 등으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 등을 지적한 판결들도 눈에 띈다.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임금성을 인정한 판결 역시 존재한다. 서울고등법원 2018. 1. 26. 선고 2016나2084314 판결 사안에서 회사는 근로자의 가입 신청서를 취합해 일괄 제출하는 방법으로 근로자들을 회사가 지정하는 개인연금 보험에 가입시킨 뒤, 근로자들에게 매월 5만 원의 정액을 지원했다. 법원은 비록 개인연금 지원금이 근로자에게 현실 지급되는 것이 아니고 용도가 제한돼 있다 하더라도 가입 경위, 지원 실태 등의 사정에 비춰 이는 소정근로의 대가로서 통상임금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으며, 개인연금 보험 미가입 또는 해지 시 보험료 지원이 없는 것은 해당 근로자의 개인적 특수성이나 선택으로 인한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만으로 일률성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2.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한 하급심 판결로는 서울남부지방법원 2025. 9. 12. 선고 2019가합110446 판결이 있다. 법원은 연금지원수당이 '연금 보험상품 가입 및 일정액 적립'이라는 소정근로의 가치 평가와는 무관한 사항을 조건으로 지급됐다고 해 통상임금성을 부정했다. 이외에도 ▲개인연금 가입 선택은 근로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점 ▲회사 지원분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료를 직원들이 부담한 점 ▲개인연금지원제도가 근로자의 안정적 노후 생활 보장 목적으로 도입된 점 역시 판단 과정에서 고려됐다.
이와 반대로 서울고등법원 2025. 7. 9. 선고 2023나2057518 판결은 △원칙적으로 전 임직원이 지급 대상으로 개인별 기준연봉의 3%~5%라는 일정 비율의 금원을 지급받은 점 △근로소득세가 원천징수된 점 △개인연금 액수가 미미하지 않은 점 △신입사원의 경우 수습기간 종료일에 지급됐으므로 기왕의 근로 제공과 무관하게 지급된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원심 판결의 결론을 정당하다고 봐 피고 회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3. 소결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대체로 소정근로 대가성 및 고정성 결여를 이유로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한 판결이 많았다. 개인연금 보험의 가입 및 유지라는 (근로 제공과 무관한) 조건 성취 여부에 따라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지원 여부 및 금액이 달라지는 점을 들어 통상임금성을 부정한 부분은 소정근로 대가성과 관련된 설시로서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로도 유효하게 통용될 수 있는 논리로 읽힌다. 그러나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 개인연금 보험의 가입 및 유지를 지급 조건으로 하는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소정근로 대가성에 대해서는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인다.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지급 방식은 기업마다 상이할 수 있으므로,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라고 해서 모두 통상임금성이 부정된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통상임금인지 여부는 그 명칭이나 형식에 관계없이 해당 금품의 실질적인 성격에 따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이후인 현재도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이 기왕의 근로 제공과 관계없이 개인연금 보험 가입 여부만 따져 지급된다면, 소정근로 대가성은 여전히 인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소정근로의 대가란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기로 정한 근로의 대가로서 사용자가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인데(대법원 2013. 12. 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근로를 전혀 하지 않아도 전액 지급되는 금품, 반대로 소정근로를 모두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급되지 않는 금품 항목에 대해서까지 소정근로의 대가성을 인정하는 것은 소정근로 대가성 개념의 본질과 맞지 않을뿐더러, 연장·야간근로를 억제하고자 하는 근로기준법의 정책 목표에도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Ⅳ. 나가며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은 근로자 개인의 선택에 따라 그 수혜 여부 및 수준을 달리하는 '선택적 복지'라는 점에서 정액급으로 제공되는 전통적인 복리후생적 급여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은 개인연금 가입 및 유지를 전제로 회사와 근로자가 불입액을 분담한다는 점, 연금의 실제 수급이 장래에 이루어진다는 점 등에서 일반적인 급여와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수성을 지닌다. 개별 기업이 지급하는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을 판단할 때는 위와 같은 특수성을 고려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그 실질을 면밀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은,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및 이를 비롯한 복리후생적 금원)은 필연적으로 재직자 조건을 수반하게 되는데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재직 조건이 부가된 임금 항목이라고 해서 당연히 통상임금성이 부정되지는 않게 됐으나 이것이 곧 재직 조건이 부가된 임금 항목의 통상임금성이 곧바로 인정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정기상여금과 같이 성질상 임금임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 규정의 잠탈을 목적으로 재직 조건이 부가된 임금과 그 본래 속성상 재직자에게만 제공되는 복리후생적 급여는 명확히 구별돼야 한다. 양자는 그 지급 목적 및 형태, 소정근로 제공과의 관련성, 재직 조건이 부가된 경위, 총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여러 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으며, 이와 같은 사정들은 모두 통상임금성 판단에 있어서도 중요하게 고려할 만한 요소이다.
10년 남짓한 간격을 두고 선고된 두 차례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의 범위에 관한 하급심 법원 및 실무에서의 혼란은 잠재워지기는커녕 더욱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폐기된 고정성 개념을 둘러싼 과거의 논의들은 새로이 정립된 통상임금 개념의 핵을 이루는 소정근로 대가성에 관한 논의에 자리를 내줄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아직 개인연금 회사 지원금의 통상임금성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나오지 않았는데, 이와 관련해 향후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한다.
※ 본 칼럼은 서호원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5년 11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0&gopage=1&bi_pidx=38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