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사발주자의 판단 기준에 관한 판례 및 의미
2025.02.03.
노동팀 뉴스레터 제8호 (03) 노동칼럼
대법원은 2024년 11월 14일 인천항 갑문 정기보수공사 중 시공사 소속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에서 해당 공사를 도급한 인천항만공사를 '도급인'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당시 인천항만공사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원심 법원인 인천지방법원으로 환송했다.
2019년 1월 15일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건설공사발주자'를 ‘건설공사를 도급하는 자로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로 정의하고(제2조제10호) '도급인'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제2조제7호 단서). 이에 따라 건설공사발주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제62조 이하에서 정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의무와는 구분되는 별도의 산업재해 예방조치의무(제67조 이하)를 부담한다. 만약 건설공사발주자가 아닌 도급인으로 판단될 경우에는 그의 사업장(도급인이 제공하거나 지정한 경우로서 지배·관리하는 위험장소 포함)에서 작업하는 관계수급인 근로자에 대해 직접적인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는 것이다.
위 인천항만공사 사건의 항소심(원심) 법원은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해당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법령상의 자격이나 능력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인천항만공사가 갑문 정기보수공사에 요구되는 강구조물공사업 등록을 갖추고 있지 않고 국가가 자본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출자한 법인으로서 건설산업기본법의 규정에 따라 건설업 등록을 신청할 수도 없는 점과 갑문 보수공사를 직접 시공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인천항만공사가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대법원은 도급인과 건설공사발주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주된 요인으로 해 해당 건설공사에 대해 행사한 실질적인 영향력의 정도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 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춰 보면 인천항만공사가 주된 목적 사업 중 하나로 갑문 보수공사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직접 설계를 했으며 철강구조물공사업 등록은 하지 않았어도 갑문시설의 유지보수를 주 업무로 하는 전담부서를 두고 있었던 점, 인천항만공사는 거대 공기업인 반면에 시공사는 자본금 10억 원, 상시근로자 수 약 10명에 불과한 소규모 기업인 점, 인천항만공사의 위험성평가표에 사고 이전부터 중량물 취급과 관련한 사고 위험이 지적돼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인천항만공사가 갑문 정기보수공사 과정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진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된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등장하는 개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법인 또는 기관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 대해 그 법인 또는 기관 등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고(제4조), 도급·용역·위탁 등의 관계에서는 시설·장비·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에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제5조). 여기서의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의 의미에 관해 고용노동부는 ‘법률상의 권리 또는 사실상의 지배력을 가지고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제어 능력을 갖는 경우’로 설명했다. 이러한 개념은 건설공사발주자의 판단 기준으로서의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지배·관리'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고서 건설공사발주자의 경우에도 같은 법령에 따른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부담하는지에 관해 건설공사발주자라 하더라도 해당 건설공사 장소에 대해 지배력을 가진 경우 예컨대 자기 사업장 내에서 시설의 유지·보수 공사를 하는 경우 등에는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부담할 수 있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과 같이 '건설공사발주자'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에 이미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지배·관리 권한' 유무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해석은 양립하기 어려울 수 있어 보인다.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한다는 판단 자체에 이미 ‘공사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할 권한이 없는 자’라는 점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 사업장 내의 시설·설비의 유지보수공사 등을 도급하는 경우에는 '건설공사발주자'로 판단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해당 공사를 수행할 자격이나 전문 인력이 없더라도 해당 시설·설비의 유해·위험요인을 가장 잘 아는 주체는 그 시설·설비를 평소 사용하는 도급사업주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공사를 도급하는 사업주는 스스로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에 해당함을 전제로 안전보건조치를 취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 본 칼럼은 김동현 변호사가 안전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 안전신문, 2024.12.12.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4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