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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화를 신는 변호사

2025.02.03.

노동팀 뉴스레터 제8호 (03) 노동칼럼


3.7평. 필자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방 한켠에 무채색 안전화가 놓여 있다. 나름 숙고해서 고른 신발로 메쉬가 포함돼 있어 그나마 통기가 되는 모델이다. 사고 소식을 들으면 곧 바로 안전화로 갈아 신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찍거나 인터뷰한 영상이 인기라고 한다. 필자는 글로나마 산업안전분야에서 변호사는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지 사고 당일의 상황을 가정하여 그 단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오늘까지가 기한인데.’


작은 방에 울리는 키보드 소리에 조급함이 묻어 있다. 파트너 변호사가 요청한 서면의 작성기한이 임박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서 인지 글은 잘 써지지 않는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갑작스레 전화기가 울린다.


“박 변, OO도 OO시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그러네. 지금 바로 출발해 줄 수 있나”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중대재해 사건은 신속한 대응이 생명이다. 산업현장은 주로 지방에 있고 수사기관은 사고 보고를 받으면 즉시 출동하게 돼 있어 의뢰인에 시의적절한 조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현장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니 서둘러야 한다.


오늘까지 마감인 서면을 뒤로한 채 택시에 몸을 싣고 그 때부터 메일로 사고 경위, 재해자 정보, 사고 장비 등 재해 관련 정보를 훑어 본다. 다만 사고 직후에는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고 현장을 직접 보지도 않았기에 사건 파악에 어려움이 많다. 기본적인 계약관계, 사고 유형, 재해자 소속, 사고 장비를 바탕으로 핵심 쟁점을 검토한 후에 현장 담당자와 본사 법무팀에 전화를 한다.


우선 전화로 기본적인 대응 요령을 안내한다. 수사기관이 자료를 요청하거나 사건 관계자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사고 관련 장비의 작업 중지 등 후속조치는 어떻게 할지 당장 대응이 필요한 부분을 알려드린다. 그리고 조력을 제공할 전문가들이 가고 있으며 향후 모든 사항은 저희와 상의해 대응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리면서 고객을 안심시키는 것도 우리의 업무 중 하나다. 현장에 수사기관이 먼저 도착한 경우에는 고객으로부터 연락처를 전달 받아 담당 수사관이나 근로감독관과 통화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요구사항을 미리 파악하기도 한다. 간혹 다른 사건에서 만났던 담당자를 또 만나게 돼 혼자 속으로 반가워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펼쳐진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경찰, 노동청, 안전보건공단에서 나와 사고 조사가 한창인 모습이다. 현장 관계자로부터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은 후에 수사기관 담당자를 찾아 명함을 건네며 변호인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함께 이동한 전문위원은 바로 사고 조사 현장에 합류해 어떤 이유로 사고가 발생했는지 파악함과 동시에 문제될 만한 법 위반 사항을 검토한다. 필자는 고객이 준비한 서류를 검토하면서 향후 쟁점이 될 만한 부분을 확인한다. 특히 위험성평가표나 작업계획서는 반드시 확인하는 자료 중 하나인데, 사고와 관련된 위험성이 미리 파악돼 있는지, 이에 대한 대책이 적절히 수립·이행되었는지 확인한다(수사과정 내내 쟁점이 되는 서류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자료의 경우 미리 수사기관에 양해를 구해 다음에 제출하기로 협의하는 것도 변호인의 업무 중 하나다.


이렇게 자료 제출 절차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고개를 돌려 사건 관계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핀다. 보통 사고 발생 초기에는 최초 목격자나 동료 작업자가 여기 저기로 불려 다니며 사고 경위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는데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조사를 받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지칠 수 밖에 없다. 이때 정식 참고인 조사까지 진행되면 피조사자의 스트레스는 더욱 높아 지게 되는데 혼란스러운 현장 상황과 여러 감정과 생각이 뒤섞여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자는 옆에 동석해서 피조사자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진술을 메모하고 간혹 사실관계와 다른 진술을 바로잡아 주기도 한다. 쉬는 시간에는 피조사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에서 진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조사가 마무리되었다고 해서 그날의 업무가 마무리 된 것은 아니다. 사무실로 복귀해서 메모한 내용을 복기하여 정리하고 수사기관에 제출된 자료를 갈무리하여 형사 리스크가 있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중대산업재해 사건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문제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미리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될 만한 부분을 발견하면 이를 보완할 자료는 없는지 찾아보고 관련 판례나 유권해석을 찾아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정리한 내용을 고객에게 보고하고 나면 비로소 안전화는 다시 방 한켠의 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 기고를 통해 변호사들도 여느 안전분야 종사자들과 마찬가지로 산업현장을 발로 뛰고 있으며 유사시에는 곧바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 본 칼럼은 박찬웅 변호사가 안전신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 안전신문, 2024.11.21.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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