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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조사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할 때 유의할 점

2024.07.29.

[노동팀 뉴스레터 제5호]


1. 들어가며


다음과 같은 가상의 사례를 상정해 보자. 직원 B가 직원 A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신고 내용은 A가 회사 통근버스에서 B의 옆자리에 앉아 B의 왼팔 상박 맨살에 자신의 오른팔 상박 맨살을 비비고, B가 이를 피해 다른 좌석으로 이동하자 재차 B의 옆자리로 이동해 같은 방법으로 추행했다는 것이다. 


조사해 보니 당시 같은 버스에 탑승한 다른 직원 C도 A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당시 상황을 유심히 관찰했고, A의 행동을 사진 촬영해 B에게 전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A는 팔이 닿았는지, 팔을 비볐는지 등 당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A는 자폐성 장애 진단을 받은 중증장애인으로, '어릴 때부터 빈자리를 채워 앉는 것을 교육받아 반복된 학습에 따라 자리를 옮겼다', '팔을 비빈 것은 상동행동일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 10년간의 정신과 의원 진단서를 제출했다. 


회사의 인사담당자로서 이러한 신고를 접수하게 되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2.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형사판결이지만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에 참고할 만한 판결로서 위 가상 사례의 기초가 되는 사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대법원은 중증장애인 피고인이 지하철에서 위 가상 사례와 동일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기소된 사안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판시 내용 중 눈에 띄는 부분은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해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3.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시 가져야 할 '성인지적 관점'의 의미


(1)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인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과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형사판결에 원용한 첫 대법원 판결인 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은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8809 판결).


(2) 구체적으로는 "범행 후의 피해자의 태도 중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만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 사정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할 수 없다"는 판시도 있다(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9도4047 판결).


(3) 원심이 강제추행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사안에서 성인지적 관점에서 무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하지만 반대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었고, … 당시는 다른 직원들도 함께 회식을 하고 나서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다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했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종합하면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과 간접사실을 평가해 범죄사실의 존재 여부를 추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판단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피해자다움'을 전제로,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만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반응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고 해서 가볍게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4. 대법원 판결이 강조하는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할 때 유의할 사항


대법원은 2023도13081 판결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판시했다. 그 이유로는 ①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 보더라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②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 및 제출 증거 등에 비추어 피해자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대법원은 위 판결의 사안에서도 성인지적 관점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인정되지만 피해자 진술이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따라간 것처럼 계속 자리를 이동하고 팔을 비빈 것은 피고인의 자폐성 장애로 인한 '빈자리 채워 앉기에 대한 강박행동' 및 '상동행동'의 일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피해자와 목격자의 진술은 그와 같은 가능성, 피고인의 장애 및 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 채 피고인이 당연히 비장애인임을 전제로 그의 행동을 평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관련해서 대법원은 "피해자도 하나의 객관적 사실 중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한정해 진술하게 되고, 여기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나 의견까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은 어느 한쪽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입장에서 직접 경험한 사실을 토대로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경우에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법원은 피고인을 유죄로 인정하려면 검사가 입증해야 하는데 그 입증의 정도는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더라도 그다음 단계로서 피해자 진술 등 증거가 피고인 주장 내용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배척하기에 충분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5. '성인지적 관점'을 적용해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사건을 조사하는 방법


대법원 2023도13081 판결이 특별히 강조하는 위 내용은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사건의 조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은 형사사건에서와 같이 '고의'를 성립요건으로 하지 않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행위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 유무죄를 판단하는 과정은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입증을 요하는 정도에만 차이가 있을 뿐 ①검사의 증명책임과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괴롭힘·성희롱 등 징계사유를 입증해야 하고, ②행위자의 고의는 징계양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으며 ③특히 직장 내 성희롱의 경우는 그 성립요건으로 '상대방이 원치 않는 행위일 것'이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고의와 마찬가지로 간접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우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단계에서는 진술 내용의 일관성, 합리성, 이에 부합하는 객관적인 증거의 유무, 허위진술의 동기 유무 등을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발휘해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든 예시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피해자의 성별, 나이, 사회·경제적 지위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간, 경력의 내용을 조사해 볼 수 있다. 주변인들로부터 피해자의 평소 언행이나 관계 형성에서의 성향 등을 파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내용 이상으로 여러 정황들을 통해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를 추리해 보는 노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조사 과정에서 조사자가 느끼기에 의아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을 근거로 곧바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곧바로 배척해서는 안 되고, 피해자에게 그와 같은 대처 등에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있었는지를 파악해 판단에 고려해야 한다(이 과정에서는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면 다음 단계로는, 피해자 진술 내용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해 피해자 진술 내용과 같은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고도의 개연성(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0다281367 판결 참조)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는 대법원 2023도13081 판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각 당사자의 진술에는 '주관적 의견이나 평가'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 든 예시에서는 피해자 B와 목격자 C의 진술이 가해자로 지목된 A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진단서 등 객관적인 자료 내용을 배척하기 충분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B와 C의 진술 내용에 부합하는 증거 방법을 생각해 보고 자료의 제출도 적극적으로 요청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A의 평소 행동 양태나 습관, 성적인 관심의 존부 및 정도에 관한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통해 A의 주장을 배척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조사 해볼 수 있고, 전문가에게 A의 성적 관련성에 대한 지적능력이나 판단능력 등 장애 상태에 관한 진단을 의뢰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에 따라 신고 사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한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되는 경우, 즉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라면(대법원 2010. 10. 28. 선고 2008다6755 판결 참조) 괴롭힘·성희롱 사실 및 이를 이유로 한 징계사유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면 징계사유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 든 사례에서 추가 조사 결과 A의 주장을 배척할 만한 자료가 더 발견되지 않는 이상, A의 성희롱은 부정될 수 있다고 본다.


6. 마치며


성범죄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사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 애매하게 대등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 경우 조사자는 대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에 관한 법리와 더불어 '가해자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신의 잘못을 덮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심정, 잘못된 판단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 2023도13081 판결이 강조한 것처럼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사실 그대로 진술하더라도 주관적 평가나 의견의 개입으로 인해 진실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드물게나마 과장 내지 허위신고도 있을 수 있고 그 동기 역시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나아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행위자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한지,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 입증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앞서 살펴본 단계별로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유주연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4년 5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106&in_cate2=0&bi_pidx=36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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