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의 ‘인지’ 기준에 대한 검토
2024.03.26.
[노동팀 뉴스레터 제3호]
1. 들어가며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그 사실 확인을 위해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
그런데 익명 제보 등에 구체적 사실관계 기재 없이 추상적인 표현(가령, 직장 내 괴롭힘 유형에 해당하는 표현)만 기재돼 있는 경우 회사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회사의 인지 여부에 대해 일반적인 판단 기준을 정한 판례나 행정해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래에서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의 '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법령에 관한 판례 사안 등을 통해 우리 법상 '인지'의 구체적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2. 문언적ㆍ연혁적 검토
인지(認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이고, 이때 '인정'은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이라는 의미이다. 즉,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은 '괴롭힘이 발생했다고 확실히 여겨 알게 된 것'을 의미하므로, 문언상인지는 단순히 아는 것보다는 약간의 구체성 혹은 확실성을 더 요하는 개념으로 볼 여지가 있다.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을 처음으로 도입한 법률 제16270호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2019. 1. 15. 공포)은 당시 발의됐던 이정미 의원안과 강병원 의원안을 종합한 대안이다. 위 두 의원안의 원문은 모두 '인지'가 아니라 '알게 된 경우'였는데, 입법 과정에서 알게 된 경우의 의미에 관해서는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안 반영과정에서 인지로 바뀐 경위에 대해서도 검토나 논의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한편,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은 2017. 11. 28. 일부개정으로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이 확인된 경우' 사업주에게 조치의무를 부과하던 기존의 규정을 사업주가 '신고를 받거나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사업주에게 조사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조문의 내용을 변경했다(제14조).
그 이후 근로기준법은 2019. 1. 15.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처음 도입하면서 인지한 경우에 조사 의무를 부과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고용평등법상 알게 된 경우의 문구에는 변경이 없었다. 따라서 연혁적으로는 인지의 의미를 알게 된 경우와 구별하기는 어렵다.
3. 체계적 검토
가. 처리 단계에 따른 구분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처리 절차는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신고(1항) → 사용자가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조사 실시(2항) → 조사 결과 발생 사실이 확인된 경우 조치(3항)로 구성돼 있다. 구조상 사용자의 인지는 신고 접수와 마찬가지로 조사 실시의 요건인데,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신고할 수 있고 신고하면 곧바로 조사가 실시된다는 점에서 사용자의 인지와 알게 된 경우는 유사한 정도의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인지는 사용자가 조치를 취하기 위한 요건인 '확인'의 전단계로서 확인(틀림없이 그러하다는 인정)보다는 확실성의 정도가 낮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나. 조사 실시를 위한 요건
인지는 신고 접수와 마찬가지로 조사 실시를 위한 요건이라는 점에서 최소한 조사의 실시가 가능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객관적으로 조사를 실시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제76조의3 제2항), 그렇다면 당사자가 특정되거나, 당사자에 준해 조사가 가능한 사람이 특정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체계상으로 인지는 당사자 또는 조사 대상자가 특정되는 등 조사의 실시가 가능한 정도로 사실관계가 구체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4. 다른 법령 및 판례 사안 검토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제10조의2 제1항은 "영업자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의심되는 (중략) 징후, 증상 또는 질병을 '알게 된 경우' (중략)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금융사지배구조법(제32조 제2항), 선박교통관제에 관한 법률(제14조 제5항),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제9조의2 제2항), 의료기기법(제31조 제1항),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14조 제4항) 등은 특정 사실을 '인지한 경우' 수범자에게 일정한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32조 제2항은 "금융회사는 해당 금융회사의 적격성 심사대상이 적격성 유지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유가 발생한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그 사실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 규정을 구체화한 같은 법 시행령 제27조는 "금융회사는 법 제32조 제2항에 따라 (중략) 사유가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그 사실을 (중략) 금융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금융사지배구조법 및 동법 시행령은 동일한 보고 의무에 대해 '인지한 경우'와 '알게 된 경우'라는 표현을 혼용해 두 표현을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관련해 판례는 담임교사가 피해 학생의 학부모에게 관련 사진을 전송하고, 관련 학생들로부터 진술서를 받고 피해자를 면담할 무렵에는 학교폭력 사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서울행정법원 2018. 12. 14. 선고 2017구합80851 판결). 위 판결이 인지의 기준을 '관련자의 진술을 받거나 피해자와 면담을 진행한 시점'으로 확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 판결은 적어도 상당히 확정적으로 특정 사실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됐을 때 해당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일반적으로 법령에서 인지는 알게 된 경우와 특별한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으나, 일부 판례에서는 '상당히 확정적으로 알게 된 경우' 인지가 됐다고 판단한 예가 있다.
5. 해외 사례 검토
일본의 노동 시책의 종합적인 추진 및 노동자의 고용 안정 및 직업 생활의 충실 등에 관한 법률(2020. 6. 시행)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우리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과 유사하나, 일본은 '상담창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처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 우리 근로기준법과 같은 인지에 대한 내용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한편 미국 연방 법원 판례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조사 의무의 전제가 되는 사용자의 인지와 관련해 '실제 인지(Actual Notice)'와 '해석상 인지(Constructive Notice)'를 개념상 구분하고 있다. 실제 인지는 사용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전달될 것을 핵심으로 하는 개념으로서 사용자가 알고 있는 증거가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때 실제로 인지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반면 해석상 인지는 '직접 정보가 제공되지는 않았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심각하고 만연해 회사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또한 다수의 미국 기업들이 휘슬 블로잉 가이드라인(Whi-stle Blowing Guideline)을 통해 신고 등에 따른 조사 개시에 관해 규정한 예시들도 참고가 될 수 있다. 다수의 가이드라인은 근거가 없거나 너무 일반적이며 추가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소가 부족한 경우 내부 고발을 기각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어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
6. 결론 : 우리 법상 '인지'의 구체적 의미
인지의 문언상 의미와 인지가 사용자에게 조사 의무를 부여하는 요건이라는 점 및 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2항의 체계적 지위를 고려해 보면 인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사가 가능할 정도'로 당사자 등 사실관계가 특정되거나 구체화돼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이 조사를 거쳐 '확인'된 경우에 비해 더 낮은 정도의 확실성, 개연성을 의미한다.
미국 판례의 해석상 인지 개념은 '알 수 있었을 경우'에 가까운 것으로 우리 법에 도입되지 않은 부분으로 볼 수 있고, 실제 인지가 우리 법의 인지와 유사한데 이는 '조사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사실관계를 알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휘슬 블로잉 가이드라인들도 대체로 추가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는지에 따라 신고를 처리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일반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전형적인 행위 유형에 해당하는) 사안 유형에 대한 인식'과 '조사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른 인지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사 가능성이란 다소 넓은 의미로 파악될 수 있어 실제 의미 있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에도 다수의 무의미한 조사를 시행한다면 조직문화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고, 비용·효율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법체계상 인지가 성립하면 사용자에게 신속한 조사 의무가 부여되는 점, 사용자가 조사 의무를 위반할 경우 처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지의 성립을 쉽게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법상 조사 의무를 다하면서도 조직문화를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인지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을 기준으로 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충분한 증거에 기반해서 조사를 진행했을 경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익명제보라도 직장 내 괴롭힘의 행위 유형에 해당하는 사실이 적시돼 있고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인지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발신인이 확인되지 않는 이메일 계정을 통한 익명제보가 특정인을 거론하되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 없이 '괴롭힘을 한다'는 주장만 하고, 이메일 회신을 통해 제보 내용을 구체화해달라는 요청에도 특별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라면 유의미한 조사 가능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인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함이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 본 칼럼은 곽민지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4년 2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106&in_cate2=0&bi_pidx=36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