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 사건을 통해 살펴보는 불법파견 판례의 전망
2024.01.29.
[노동팀 뉴스레터 제2호]
1. 들어가며
불법파견 사건은 상고심에서도 오랜 기간 심리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심판결이 완전히 파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상고심에 계속 중인 항소심 판결들을 통해 짧게는 내년, 길게는 수년 후의 대법원 판례를 짐작해 보게 된다. 현재 상고심에 계속돼 있는 사건들을 기준으로, 현재 대법원에서 다루고 있거나, 다룰 것으로 기대되는 불법파견 쟁점을 살펴본다.
2. 불법파견의 구체적 판단기준 보완
현대자동차 치장업무 사건(대법원 2020다299306 사건)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치장업무를 수행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상 파견근로자에 해당하는지 문제된 사안이다. 치장업무란 완성된 수출용 차량을 국가별, 차종별로 구분해 야적장에 주차하는 업무를 말한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원고들의 근로지지위확인청구 및 고용의무 이행청구를 모두 기각했다(서울고등법원 2020. 12. 2. 선고 2019나2041509 판결).
이 사건이 주목받는 것은 원심판결이 불법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대법원 판례 법리를 일부 수정 또는 보완하는 법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5년 이후 다섯 가지 요소에 따라 근로자파견 관계와 도급 등을 구별하고 있다. 즉, ①도급인 등(발주자, 위임인 등을 포함함)이 수급인 등(수주자, 수임인 등 포함)의 근로자에 대해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수급인 등의 근로자가 도급인 등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는지 ③수급인 등이 인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수급인 등의 업무가 도급인 등과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⑤수급인 등이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이 그 기준이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그런데, 이러한 판례 법리에 대해서는 다섯 가지 판단요소 간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거나, 경중의 구분이 없어 실제 사안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꾸준히 있어 왔다. 특히, 대부분의 재판례가 불법파견이 성립하는 경우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졌다고 판단하고, 불법파견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위 다섯 가지 요소가 모두 부정된다고 판단해 왔기 때문에 어떠한 요소가 결론에 얼마나 영향을 준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 사건의 원심판결은 위 다섯 가지 요소들 중 ①, ②를 핵심적인 징표로, 파견 판단요소 ③, ④, ⑤를 부차적·보완적인 징표로 봤는데, 이러한 판단이 대법원에서 인정돼 2015년 이후 유지돼 왔던 판례 법리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대법원은 2023. 4. 27. 판결 선고기일을 지정했으나, 다시 선고기일을 연기했고 현재까지 새로운 기일이 지정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고민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3. 예외적ㆍ일회적 업무에 대한 평가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불법파견 점검을 할 때에는, 불법파견의 정황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이 예외적인 경우에 불과하다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가볍게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소송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러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즉, 원고가 증거로 제시한 경우 외에는 없었다)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실제 소송에서는 예외적·일회적인 사례로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게 되고, 무엇보다도 어떤 사례가 예외적·일회적이라고 재판부에서 판단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앞서 본 서울고등법원 2019나2041509 판결은 예외적·일회적인 업무로 인해 도급계약의 성격이 파견계약으로 전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한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구체적으로, 위 사건에서는 치장업무가 완료된 이후 뒤늦게 차량결함이 발견돼 도급인이 수급 업체에게 위 차량을 찾아줄 것을 요청한 경우 등이 문제됐는데, 서울고등법원은 이러한 업무가 원고들이 수행한 일상적인 업무였다고 보기 어렵고 전체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낮다고 봐 도급인 등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부정했다.
4. 당사자별 업무와 계쟁기간의 구별
불법파견 소송에는 다수의 근로자가 참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이는 소송법적으로는 통상공동소송일 뿐이므로 결국 근로자마다 개별적으로 증거 및 주장에 관한 판단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많은 근로자들 각각에 대해 판단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에는 하나의 소송 내에서는 근로자들의 소속 업체나 수행 업무가 다르더라도 이를 구분하지 않고 뭉뚱그려 판단하는 판결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업무를 전혀 달리하는 근로자들이라도 같은 기회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어찌 보면 우연한 사정에 의해 결론이 크게 달라지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선고되는 판결들 중에서는 근로자들의 소속 공정이나 수행 업무별로 판단을 달리하는 경우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법원에서 2022. 10. 27. 선고한 일련의 판결들은 현대차·기아의 여러 간접공정에 대해 불법파견 성립을 인정했으나, 2차 협력업체에서 서열·불출 업무를 수행한 일부 근로자에 대해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불법파견의 성립을 부정했다(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17다15010 판결 등). 이와 같이 하나의 사건 내에서도 원고의 소속 업체나 수행 업무에 따라 결론을 달리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사실은, 최근 하급심 판결의 심리에도 실무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최근 진행되고 있는 하급심 사건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각 근로자의 수행 업무별로 증거와 사실관계를 구분해 구체적인 주장을 하도록 요구하는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현재 상고심에 계속 중인 사건 중에서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건은 당사자들 간의 구별이 문제 된 경우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별로 소속업체와 공정도 달랐지만 계쟁기간도 크게 차이가 났다. 위 사건은 원고별로 적용되는 파견법에 따라 사건이 나뉘어, 1998.~2005. 6. 30. 사이에 입사한 원고들은 근로자지위 확인 청구를 했고(대법원 2019다29013 사건), 2005. 7. 1.~2011. 사이에 입사한 원고들은 고용의무 이행청구를 했다(대법원 2019다28966 사건).
문제는 이 사건 각 원심판결에 따르면 이 사업장에서는 2006년을 전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처음에는 도급인이 작업표준서를 작성했지만, 2006년 이후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작성했다고 판단하거나, 2006년 이전에는 도급인의 직접 지시가 있었으나 2006년 이후에는 없었다고 판단하는 등 2006년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는 취지의 판단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2005~2006년을 전후해 도급인이 업무방식을 개선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다만, 이 사건 각 원심은 이와 같은 사실관계에서는 2005~ 2006년을 전후해 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다수 인정했으면서도, 결론에서는 모든 근로자에 대해 아무런 구별 없이 불법파견 성립을 인정했다(심지어 항소심 진행 중 정년을 도과한 원고에 대해서도 근로자지위확인청구를 인용했다).
공정이나 시기별로 지휘·명령의 양상이 달랐다고 사용자가 주장하는 사건은 많이 있었지만 이 사건과 같이 판결문 자체에서 이를 인정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구분 없이 모든 원고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사건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사건의 경우 공교롭게도 사업장에서 사정의 변화가 있었던 시기를 전후해 두 개의 사건으로 나뉘어 있는 점에서 계쟁기간의 차이가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대법원에서 당사자별로 계쟁기간을 구분한 구체적인 판단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5. 기타 사건
금호타이어 조리원 사건(대법원 2022다276369 사건)은 불법파견에서 '상당한 지휘·명령'의 인정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원심인 광주고등법원 2022. 8. 17. 선고 2020나23836 판결은 곡성공장 조리원과 금호타이어 사이에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했는데,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었다고 본 주된 이유는 원청 직원인 영양사가 조리원에게 주간메뉴표를 제공했는데, 여기에 메뉴의 선정뿐만 아니라 재료의 비율과 재료의 비율과 모양, 간단한 조리방법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는 흔히 말하는 '레시피'에 해당하는데, 그렇다면 레시피의 전달까지도 지휘·명령으로 봐야 하는지, 그렇다면 설계도나 시방서도 지휘·명령에 해당하는지 등 고민을 하게 된다. 실제로는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은 사정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판결문상으로는 주간메뉴표의 교부가 지휘·명령을 인정한 주된 근거로 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6. 나가며
불법파견과 관련된 대법원의 판례는 하급심의 판단기준과 수범자들의 행위기준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상고심에 계속 중인 사건들을 통해 대법원이 불법파견의 법리를 더욱 정교하게 보완해 가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구자형 변호사가 월간노동법률 2023년 11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https://www.worklaw.co.kr/main2022/view/view.asp?in_cate=106&in_cate2=0&bi_pidx=36075